복음은 사랑하게 만듭니다.
(행 7:1~53)
오늘 여러분들과 나눌 주제는 순교입니다. 순교라는 단어는 우리가 잘 아는 단어지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단어입니다. 우리와 동떨어진 단어처럼 여기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순교를 성경에서만 나오는 사건이거나 또는 먼 선교지에서 아주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순교라는 단어를 들을 때 나와 상관없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통해 순교가 우리와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함께 보겠습니다.
순교는 사랑입니다.
오늘 이야기에 나오는 스데반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제자로서의 삶에 마지막 단계는 순교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하다가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은 초대 교회의 모든 사도와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제자들은 대부분 순교를 했습니다.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무엇이 순교자들로서 죽음을 결정하게 했을까요?"입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사랑"입니다. 모든 순교자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예수님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보다, 자기 생명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순교의 핵심은 "죽음"이 아닌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은 순교는 단순히 "죽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순교를 죽음으로 본다면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고 또 정말 상관없는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한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맏는 것 때문에 생명의 위협 가운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순교를 "삶"으로 본다면 그것은 나와 상관있는 이야기이고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부르심입니다.
순교자의 삶에는 갈등과 상처가 없습니다.
순교자의 삶은 단순한 고생의 삶이 아닌 축복의 삶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스데반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젊은 나이에, 꿈도 펼쳐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신앙의 눈으로 봐도 집사로 뽑히고 나서 설교 한편 하고 죽은 인생값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았고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모습에 불행함이 없었습니다. 순교하는 순간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 같았다고 성경에 쓰여 있습니다. 돌을 던진 사람들은 거짓을 이야기하고 거짓 증인을 세워 고발과 야유와 비난을 하면서 스데반을 공격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누군가의 공격이, 야유가, 비난이 다 상처로 남습니다. 그런데 그 돌에 맞아 죽는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이 얼굴은 순교자의 길을 얻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얼굴입니다. 순교자의 길을 걷는 자에게는 그 지긋지긋한 상처가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상처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기심과 자기 자랑이 바탕입니다. 그런데 순교자의 삶 가운데에는 이미 벌써 주님께 생명을 드려버리니까 이기심과 자기 자랑이 없습니다. 그래서 순교자의 길을 걸어가는 자는 그를 적대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순교자로서의 첫번째 축복은 삶의 갈등과 상처로 부터 벗어나고 그것들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그분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순교자의 길을 걷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습니다.
순교자의 길을 걷는 자의 두번째 유익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순절 사건 이후 베드로가 사람들에게 예수가 어떤 분인가를 증거할 때 이렇게 증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였다" 그런데 오늘 설교를 하는 스데반을 묘사하면서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안에 행하니라" 말했습니다(8절). 그야말로 예수의 복사판입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게 연습한다고 되겠습니까? 죽어가는 그 순간에, 돌에 맞아서 정신을 잃어가는 그 순간에 그 입에서 마지막 말로 나온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나온 말과 똑같은 말이 나왔다고 하는 이야기는 모든 면에서 스데반이 예수님과 똑같다는 뜻입니다. 순교자의 삶을 걸을 때 예수님을 닮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체가 순교자이셨으니까!
순교자란 자기의 삶을 내려놓고 주님의 삶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순교자란 자기를 향한 사랑보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더 큰 자입니다. 순교자란 소망을 자기에게 두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두는 자입니다. 오늘 우리는 순교자의 삶을 살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이고 예수님을 위해 즉는 것입니다. 즉을 때까지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삶, 그것이 오늘 우리가 걸어갈 수 있는 순교자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