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세종 산성교회 말씀(2024년)


[08.11] 믿음은 생각의 틀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8. 11 오후 5:29

지성업 ( 산성교회 - 말씀(대전) ) ;  김효성 ( 산성교회 - 말씀(세종) ) ; 

27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쫓으로 하시니

28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 29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 30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가시느냐 31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32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33저희가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뇨 35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저희가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36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합하지 아니라하리라

37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38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눅 5:27~39)

근대에 들어 많이 새롭게 등장한 용어 중에 하나가 패러다임 쉬프트입니다.

패러다임 쉬프트라는 말이 오늘날에 와서 자주 쓰이는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생각의 변화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할 때마다 나타난 현상 중의 하나는 유대인들과의 갈등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도 예외는 아니어서 예수님께서 세리 레위를 부르실 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방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계속 비방하는 것은 단순히 감정적인 차원이 아니라 생각의 틀의 차이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구약의 잣대로 예수님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낡은 생각의 틀을 거부하시면서 새로운 생각의 틀로 변화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청하신 새로운 생각의 틀은 무엇일까요?

1. 생각의 틀의 뿌리는 복음주의적 가치관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관에 있는 레위를 부르시고 그 집에 가셔서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던 바리새인들이 율법주의적 사고에 근거해서 죄인들과 교제하면 안되는데 어찌하여 당신과 제자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먹고 마시느냐고 비방하였을 때, 예수님은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한 것처럼 죄인들과 세리들도 다 구원받아야 할 자들이기에 함께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대답이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시관들의 생각의 틀을 뒤집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직 죄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다른 가치보다도 죄인을 구원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주의의 핵심입니다. 교회는 구원을 위해 존재하고 복음을 위해서는 율법주의적 사고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2. 새로운 생각의 틀은 진리 안에서 자유로움을 추구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요한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는지 물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당시에 금식하고 기도하는 금욕주의적인 것이 경건이다라는 전통주의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전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라는 태도로 예수님께 질문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에 혼인집에 신랑이 있을 때는 손님들을 금식시키는 경우가 아디 있는냐, 그때는 함께 즐겨야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진리 안에서 자유로운 사고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의 삶과 신앙 생활이 주님의 진리 안에서의 축제가 될 수 있습니다.

3. 새로운 생각의 틀은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질문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태도는 인본주의적인 사고였습니다. 사람들의 여론과 평가에 민감한 태도였습니다. 이것은 낡은 부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가가 더 중요한 관심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져오신 새로운 가죽 부대였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음에는 생명력이 넘쳤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사고방식이나 신앙으로는 도저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수요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기존 질서를 모두 무너뜨리는 대단히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려면 반드시 변하여 새사람이 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묵은 포도주에 중독된 사람은 아무리 복음을 들어도 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고민입니다. 우리는 날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의 틀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삶에 예수님의 생명의 능력이 넘쳐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