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 공동체문화의 가치와 활용


전통 공동체의 현대적 의미

2020. 9. 23 오후 6:02

최근 들어 공동체 논의는 보다 정치적이고 대안적인 전략으로서 ‘공동체의 이상’ 을 발견하려는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 테일러(C. Taylor)를 비롯한 신공동체주의자들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가치, 규범, 역사적 정체성 등을 공유하면서 서로간의 관계성을 유지·강화하며,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개입하여 공동선을 창출한다고 본다. 공동체주의는 구성원들이 보편적 권리에 따라 이해를 공유하기보다는 공동생활에의 참여를 통해 가치를 공유하게 된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참여는 구성원들이 공동목적의 추구를 위해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게 하여 일체감을 배양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공동체주의는 이렇듯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여 ‘공동체 결속’과 ‘개인의 자율성’ 측면을 모두 중시한다.

그렇다면 농촌 전통공동체가 추구하는 주요한 가치들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된 연구를 살펴보면, 자치(자율)성, 윤리성, 경제적 상호부조를 공통적으로 제시 한다. 먼저 전통 공동체 구성원들은 자율성을 바탕으로 향민을 보호하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향촌공동체의 자치성은 향민들의 사회의식을 고양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과실상규로 대표되는 제재조치의 시행, 경제적 부조와 자립을 위한 공동체의 공동재산을 통해 자치성이 유지되었다. 윤리성은 개인적 수양의 권장과 규범의 실천을 통해 실현되었는데, 사회적 권위를 획득하면서 스스로를
점검하게 하고 행위를 제한하는 양면적 가치로 작용했다. 상호부조는 전통 공동체 활동의 기본원칙이었다. 구성원의 개인적 불행과 공동체의 불행을 함께 극복하기 위한 장치였으며, 삶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불확실성의 문제들에 공동체가 호혜적으로 대응하는 수단이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공동체적 가치와 현실적인 대응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삶의 위기를 극복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급격한 사회변동을 거치면서 공동체의 사회·경제와 맞물린 문화적 구조들이 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약화되고 있다. 전통 공동체조직을 유지하는 주요한 자원으로 자리했던 공유재산의 쇠퇴 현상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변화를 개릿 하딘(Garrett Hardin)은 ‘공유의 비극’이라는 표현을 통해 공동소유의 제한적 토대를 바탕으로 개인들이 자유롭게 이윤추구를 하다보면 결국 모두가 파멸로 치닫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개릿 하딘의 논의는 다양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그를 계승한 후대 학자들은 공유의 비극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지역공동체와 전통에 주목하였다. 이들은 국가나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이어오던 공유 자원에 대한 관리 방식을 통해서 공유의 비극을 극복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사회에서 공유의 비극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개릿 하딘이 주장처럼 공유자산에 대한 무분별한 탈취가 주민의 삶을 압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총유로서 지속되어오던 공동자산이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사회와 충돌하면서 공유의 개념으로 변개하여 물적 기반을 잃고 마을공동체마저 갈등과 반목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연장선상에서 이런 공유의 비극은 유형 자산에 대한 지분 개념이 도입되거나 그에 대한 소유권을 개인 혹은 특정 조직, 공권력 등이 점유하면서 마을 공동의 자산이 특정한 대상에 귀속되는 방식으로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전통 공동체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공동체 복원 사업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 바로 공동체 복원을 위한 사회적 노력이 자칫 공동체성을 통한 통치를 작동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시선과 전통적인 공공성과 상호부조를 주요 가치로 표방하지만, 다분히 정책적 제안이나 이론적 논의에 머물고 만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아울러 지자체의 마을 만들기 사업이 환경과 삶의 개선이라는 현실적인 필요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공간이지만 정책 실행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 역시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에서 공동체에 대한 논의는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되었다. 그것은 압축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고 있는 한국사회의 다양한 사회 문제가 공동체의 위기 혹은 부재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의 공동체성복원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성장 중심의 개발과 소비 중심의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을 통해 공동체가 대안으로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위험사회(Risk Society)’라 일컫는 현대사회의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그리고 다양한 사회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의 하나로 공동체 복원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관심이 정책과 제도에 반영되고 있다. 이렇게 공동체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대안적 가치라는 공감을 넘어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현실적인 필요성에 기반하고 있다.

한편, 공동체성의 위기에 대한 사회적 대응이 지역과 대상에 따라 다양하게 검토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증가하고 있다. 농촌지역의 경우 인구감소로 인한 공동화 현상, 거주 인구의 고령화 등으로 인해 농촌 공동체의 붕괴라는 사회적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도시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세계평균 도시화율이 54%인데 반해, 82.5%에 달하는 한국의 도시화율 역시 심각한 상황이다. 인구의 도시 집중으로 인해 발생하는 주거환경의 악화가 공동체 의식의 약화로 이어지면서, 또 다른 의미의 공동체 위기를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주환경을 개선하고 공동체성을 복원하자는 취지 아래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이 정부기관과 전국 지자체에서 앞 다투어 진행되고 있다.

도시와 농촌의 공동체 복원 사업들이 증가하게 되면서, 이와 관련한 연구도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도시의 마을공동체 만들기와 관련된 연구에 치중되어 있으며, 이런 접근은 사회적 경제, 사회적 자본, 시민성, 공공성 등의 개념을 빌어 마을을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반해 농촌의 전통 공동체에 대한 연구는 매우 제한적이며 미미한 상황이다. 민속학 분야에서 조직, 성격, 운영원리, 가치 등에 대한 연구가 다수 이뤄졌지만, 전통 공동체와 현재의 공동체에 대한 비교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을 뿐 아니라, 실제로 농촌에 거주하는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공동체에 대한 검토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