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 공동체문화의 가치와 활용


당산나무와 승경도놀이판_전북 김제시 청하면 관상리

2020. 10. 5 오후 4:31

마을 현황

  • 세대와 인구: 28가구 52명.
  • 역사와 유래: 본래는 만경군 지역으로 ‘북일도면’이라 하여 장산 등 18개 마을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만경군 북면의 송상, 송중, 송하의 일부와 김제군 마천면의 관상, 동이도면의 신기리 일부를 합하여 청하산의 이름을 따서 청하면이라는 이름으로 김제군에 편입되었다. 1995년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합됨에 따라 김제시 청하면이 되었다. 관상리는 조선시대 중엽 전씨, 송씨, 오씨, 조씨 등이 모여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참판, 좌랑, 정령, 현감 등의 벼슬을 한 사람이 많이 살게 되자 관촌으로 부르다가, 관동(冠東) 위에 있는 마을이므로 관상리(官上里)라 하였다.
  • 주요 소득원: 벼, 콩, 고추, 순채. 마을 방죽에 순채가 많이 났다.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일본으로 수출하기도 하였는데, 마을 방죽 생태의 변화로 거의 사라진 상태이나 앞으로 ‘순채’를 주요 소득산업 특화작물로 개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 마을의 특징: 만경강과 접하고 있는 광활하고 비옥한 평야지대로 주로 벼농사를 짓고 있다. 논농사가 80%를 차지한다. 마을주민들 중에 벼슬길에 나아간 분들이 많아 이들에 관한 고문서 및 유물들이 다수 전하고 있다. 청하산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구릉과 물줄기들이 여러 겹의 연잎으로 감싸고 있는 ‘연꽃 속’에 마을이 있는 형국이다. 예로부터 ‘일(一)관상, 이(二)장화, 삼(三)평고’라는 말이 전해 오고 있다. 즉 김제지역에서 첫 번째 가는 마을은 관상마을, 두 번째는 장화마을, 세 번째는 평고마을이라는 것이다. 관상리의 관상, 관신, 관동 3개 마을은 본래 하나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일관회를 조직하고 해마다 음력 7월 15일에 함께 모여 백중놀이를 하고 있다. 만두리 재현과 백중음식 나눠먹기, 씨름, 들독들기 등 백중놀이 문화를 함께 즐기는 한마당 잔치이다. 일관회 백중놀이는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마을 행사로써 3개 마을 단합을 촉진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마을공동체 전통유물 전승실태

[마을 민속과 문화 환경]

백중날(음력 7월 15일)을 앞두고 김제시 청하면 관상마을에서 전통 백중놀이 복원 행사가 개최된다는 것을 지역 방송사와 일간지들이 앞다퉈 전해주었다. 관상마을 백중행사는 당산제를 시작으로 행사가 진행되는데 관상, 관신, 관동 3개 마을의 일관회원 150여 명이 참여하고 이들이 희사한 금액으로 행사를 진행한다. 초기에는 인근 6개 마을 주민을 중심으로 운영이 되었으나 현재는 3개 마을 주민들만 회원으로 가입하여 운영되고 있다. 회갑을 맞이한 회원은 30만 원을 기부하고, 그 외에는 정해진 액수와 관계없이 성의껏 희사를 한다.

당산제의 제관은 조씨 종손, 일관회 창시자, 오씨 종손이 맡으며, 제물은 돼지머리, 과일(밤, 대추, 곶감, 배, 사과), 포(명태포), 팥시루떡(당산제를 지내기 위해 전용으로 사용되는 시루가 있는데 이를 ‘조상시루’, ‘당산시루’로 부른다)을 시루 채로 올린다. 제주에 사용되는 술은 직접 관상마을에서 나이든 사람이 누룩을 발효시켜 담는데, 관상리에서 생산된 찹쌀로 고두밥을 쪄서 수수를 섞고 여기에 당귀, 계피, 도라지, 감초 등에서 추출한 액을 섞어 누룩과 발효를 시켜 막걸리로 마신다. 처음에는 물처럼 맑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탁해지기 시작하면서 막걸리 식초가 된다. 이 막걸리는 아무리 많이 마셔도 숙취 없이 술이 깨며 깔끔하다고 한다. 농악을 앞세워 길놀이를 하고 유교식 제의에 따라 제를 지내며, 돼지 입에 돈을 물리고 절을 하는 것으로 당산제가 끝난다.

김매기는 가장 무더운 한 여름철 뙤약볕에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매우 힘들고 어려운 농사일이다. 백중 무렵 마지막 김매기인 ‘망시’가 끝나면 힘든 농사일을 마감하고 추수를 기다리면서 지방에 따라 호미걸이, 호미씻이, 풋굿, 백중놀이 등의 놀이가 벌어지는데, 관상마을에서는 마지막 하는 3번의 김매기를 ‘만두리’라고 한다. 만두리를 하면서 부르는 민요가 전한다. 

日落西山晩農社, 月出東嶺洗鋤宴

老巨樹下堂山祭, 官上百中戱盛現

踏神農樂至天感, 民草亂打動幽賢

寶吳楊趙協化榮, 風淳俗厚承萬年

일락서산에 해 떨어지고 / 에헤라 뒤어야 만두레하세.

월출동쪽 고개 달 떠오르니 / 에헤라 뒤어야 호미씻이하세.

오백년 마을을 지켜온 노거수 찾아 / 마을의 번영을 비는 제를 올리네.

관상마을 온 정성으로 폭염을 뚫고 /백중놀이 성대하게 재현되었어라.

지신밟기 풍장으로 진동하고 / 궁더쿵 궁더쿵 하늘님 감동하네.

민초난타리듬으로 땅을 감동시켜 / 궁더쿵 궁더쿵 옛 현인들 깨어나세.

보성 오씨 양주 조씨 서로 힘을 모아 / 교화하고 번영을 구가하고 있네.

청하 관상 마을 내려온 풍속이 순후하니 / 세세만년 이어가며 낙토를 이루세

신라시대 농사 노래의 후렴구인 地利多利也 多農多利乎가 자꾸만 입에서 맴돌아 나는 것은 이러한 흥이 절로 나는 것이라 생각된다. 가장 힘든 일이었던 김매기가 끝나면 모처럼 음식을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관상마을에서 재현된 만두리에서 누구나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걸게 장만해서 나누는 백중음식 나누기의 미풍양속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직접 담근 막걸리로 술멕이를 재현하는 모습에서 농사일로 고생한 농사꾼들이 노고를 풀어주고 해방감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공동체 민속 유물]

  • 줄다리기: 줄다리기는 한 마을 혹은 여러 마을이 함께 참여하는 놀이로 벼농사를 배경으로 하는 지역에서 대부분 행해지는 놀이다. 줄다리기는 주로 짚을 이용해 줄을 만드는데, 관상마을에서는 해마다 줄을 새로 만들어 줄다리기를 했다. 지금은 줄을 꼬지 않지만 여성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고 이번 행사에서도 여성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줌으로써 풍년을 기원하였다.
  • 들독(들돌): 농촌에서는 백중을 머슴들의 생일이라고 불렀다. 한여름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서 논바닥을 헤집고 다니며 한 올의 나락이라도 더 거두기 위해 비지땀을 흘린 농군들이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시기가 바로 백중이다. 힘든 일을 마친 농군들에게 새 옷과 신발을 마련해 주고 맘껏 내기를 하면서 놀 수 있도록 술과 음식을 내어준 주인으로부터 새롭게 새경을 올려 받을 수 있는 검증장치가 바로 들독들기이다. 나이가 어리고 힘이 모자란 머슴은 새경을 어른 머슴의 반밖에 받지 못했다. 그래서 예부터 들독 들기는 농촌에서 힘자랑하는 놀이의 하나였고 농군의 자격을 갖추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검증장치였다. 이를 통해 성인이 된 농군은 제대로 된 일꾼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관상마을에는 들독이 2개 있는데, 어느 것을 어떠한 방법으로 들어 올리느냐에 따라서 품삯이 달리 책정되었다. 큰 들독은 가로 46㎝·세로 32㎝·높이 20㎝·둘레 128㎝이고, 작은 들독은 가로 30㎝·세로 23㎝·높이 24㎝·둘레 103㎝이다. 어떤 들독을 들어 올리느냐에 따라서 새경을 받는 나름의 규약이 정해져 있었고 들독을 들어 올리는 방법과 높이에 따라서도 새경이 달라졌다고 한다. 가슴까지 들독을 들어 올려서 어깨너머로 넘기는 일꾼을 최고의 머슴인 상머슴으로 평했다고 한다.
  • 승경도: 종이 말판 위에서 누가 가장 먼저 높은 관직에 올라 퇴관하는가를 겨루는 놀이다. 말판은 가로 80㎝·세로 120㎝ 크기의 바둑판형이다. 말판에 많은 칸을 만들어 관직명을 써넣고 윤목을 던져서 나오는 숫자에 따라 말판을 이동하면서 최종벼슬에 먼저 도착한 사람이 이긴다. 윤목은 승경도놀이를 할 때 던지는 막대형 윷으로 길이가 15㎝ 정도 되는 것을 이용한다. 승경도놀이판(말판)은 ‘조선종정도’라고 쓰인 1962년 인쇄본으로 관상리에 살고 있는 조씨 종손의 할아버지 때부터 이용하던 것이다. 명절이나 여가시간에 사람들이 모이면 각각 양쪽으로 편을 나누어서 사용하였다. 남자아이들에게 학문을 익혀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오르는 꿈을 키우게 하고자 했던 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