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 공동체문화의 가치와 활용


전통 유물의 가치와 활용

2020. 10. 5 오후 5:19

전통시대의 마을은 농업을 근간으로 하여 공동체적 가치가 구현되는 삶의 근원적 토대였으며, 생업과 의식주, 의례와 놀이 등 삶의 모든 희로애락이 깃들어 있는 전체성의 공간이었다. 반면에 산업화시대의 마을은 공업화와 도시화로 전통적인 마을공동체가 변형되고, 해체되고, 소멸되면서 개별화된 만남이 중심이 되는 익명성의 공간으로 탈바꿈되었다. 더구나 농촌 인구의 과소화와 고령화로 인해 전통문화를 전승해온 주체로서 마을공동체가 와해되면서 그 활동의 산물인 전통유물 역시 위협에 처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마을신앙의 중심이었던 서낭당, 당산나무, 돌탑, 장승, 솟대, 입석 등은 종교적 의미를 상실한 채 마을의 중심에서 밀려나 후미진 곳에 방치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으며, 주민들의 일생의례와 함께 해왔던 상여, 가마 등의 의례용구와 복식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우물을 비롯해 물레방아, 연자방아, 섶다리 등 생업과 생활 속에서 마을주민들이 공유해왔던 시설물들도 오래 전에 마을공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고단한 삶의 여백이 되어주었던 들돌, 그네, 널뛰기, 윷, 고누, 투호 등의 놀이도구들도 어디론가 사라졌거나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시대가 변하고 가치관이 변하면서 후미진 곳에 방치되고 있지만, 마을공동체와 그들이 보전해온 전통유물의 가치가 영영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래되고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은 가치를 지니는 것처럼, 시간의 더께가 켜켜이 쌓여 있는 전통유물 역시 다양한 활용 가능성을 예비해둔 미래의 자산이라 할 수 있다. 전통사회를 유지해온 마을공동체와 그 문화적 산물은 현대사회에서도 농촌의 가치와 정체성을 보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인 것만은 분명하다.

어느 시대든 가장 많은 사람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소비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가장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그래서 18세기에 산업혁명이 있었고 20세기에 정보혁명이 있었다. 지금은 누구나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롤프 옌센은 미래사회를 예측하면서 “가장 훌륭한 이야기를 가진 전사가 세계를 지배한다, 그리고 세계시장도”지배한다고 했다. 바야흐로 이야기, 즉 시간의 자원이 되는 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문화콘텐츠는 농업시대의 토지나 공업시대의 지하자원 같은 공간자원이 아니라 시간에서 자원을 가져온다. 이 연구의 중심 소재인 전통유물은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린 잔존문화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마을공동체 구성원과 동고동락해온 전통유물은 역사와 기억, 이야기와 삶의 흔적 같은 시간자원을 세월의 더께 만큼 켜켜이 쌓아오면서 다양한 문화콘텐츠 자원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잘 만들어진 문화콘텐츠는 마을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의 감수성을 자극하여 지역 특산품이나 농산물을 구매하게 하고, 마을에 오랫동안 머물게 하고, 다시 찾아오게 하여 마을공동체의 소득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좋은 자원을 발굴하고 이를 문화콘텐츠로 가공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가장 적절하고 좋은 소재가 바로 마을공동체 전통유물이라 할 수 있다. 생업과 생활, 신앙과 의례, 놀이와 여가 등과 관련된 마을공동체 전통유물은 그 자체로 문화콘텐츠 원형자원이며 신화, 전설, 민담 등 독특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어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가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공동체 전통유물을 보존하고 후대에 전승하기 위한 가장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은 활용에 있으며, 이는 농촌관광, 농촌체험, 전통문화교육, 마을축제 등에 활용할 다양한 문화콘텐츠 개발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요즘과 같은 문화산업시대에는 문화가 상품으로 소비되면서 문화콘텐츠의 소재자원으로 전통유물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 더구나 마을공동체 전통유물의 활용은 문화산업적 차원의 경제적 수익 창출뿐만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보존·전승하고 침체된 농촌지역과 마을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마을공동체의 전통유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마을여행, 전통유물 탐방, 향토음식체험, 전통놀이 체험, 공동체의례 체험 등의 문화콘텐츠로 개발한 이 연구의 결과가 전통유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제고하고 더 나아가 마을주민 소득 증진에도 기여하기를 바란다.

이 연구는 마을공동체가 남겨놓은 전통유물을 보전하고 지속가능한 활용 방안을 강구하기 위한 것으로, 마을공동체의 전통유물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문화콘텐츠로 개발하여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까지 시도하였다. 연구 대상 마을은 전국의 54개 마을을 대상으로 한 기초조사 과정에서 확인한 전통유물 보유 현황과 주민들의 의지를 기준으로 하였으며,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 녹전리 삼굿마을과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용연리 도래수마을을 최종적으로 선정하였다. 삼굿마을은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17회에 걸쳐 ‘삼굿축제’를 개최해오고 있으며, 삼굿가마, 성황당, 초가집, 등 마을신앙, 혼례, 생업, 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전통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도래수마을은 2006년부터 농촌진흥청의 지원을 받아 농촌전통테마사업을 하면서 체험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으며, 동화정, 돌탑, 천륭제단 등 다양한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전통유물을 활용한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가장 먼저 마을공동체 전통유물 자료수집을 통해 유망자원을 발굴하고 스토리텔링 기법을 도입해 콘텐츠를 개발한 후 마을축제 현장에서 실제로 운영해보았다. 자료 수집은 마을 현장조사와 주민 면담조사를 중심으로 한 질적 연구방법을 택했으며, 전문가들과 마을주민들이 함께 참여한 현장협의회를 통해 주민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된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연구개발 과정은 2017년 4월부터 전통유물 자료 수집에서 시작하여, 마을을 대표하는 전통유물 선발과 심층조사를 거친 후, 스토리텔링 기법을 도입하여 콘텐츠를 개발하였다. 삼굿마을에서는 2017년 9월 16~17일에 열린 삼굿축제에서 방문객을 대상으로, 도래수마을에서는 2017년 10월 28일에 방문한 꼬마유치원의 부모와 원아들을 대상으로 실제 적용해보았다. 이 글은 전통유물 관련 콘텐츠를 실제로 접목한 사례를 순차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이후 전통유물을 활용한 축제콘텐츠 개발에 있어 다소나마 참고자료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