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 공동체문화의 가치와 활용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온 용연리 도래수마을 위친계_전남 담양

2020. 10. 5 오후 3:15
  • 전남 담양군 용면 용연리
  • 조사일 : 조사일 : 2016. 4. 12.

마을의 유래와 현황

도래수 마을의 본래 이름은 분통리로, 마을의 큰 골짜기인 ‘분재실’과 ‘통사골’의 앞 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과 옥녀가 시집올 때 얼굴에 바른 분가루를 담은 분갑에서 유래되어 분통(粉桶)이라 불렀다는 설이 전해진다. 도래수(到來水)라는 이름은 2006년 마을이름 공모를 진행하면서 만들어졌다. 우주만물 가운데 하나인 도래수마을의 냇물도 흐름을 이어가다 어디선가 수증기로 증발하여 안개와 구름이 되고 비와 눈이 되어 지상으로 내려와 다시 냇물로 흐르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용연리 분통마을은 1670년경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진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대흥(大興), 분통(粉桶), 용평(龍平), 소천지(小天持), 세룡동(細龍洞), 용동(龍洞) 등과 함께 용연리(龍淵里)에 속하게 되었으며, 1961년 10월 1일자로 조례에 의거하여 용연리 1구 분통마을로 부르게 되었다. 분통마을은 추월산을 끼고 담양호를 돌아 전북 순창에 이르는 792번 지방도에 근접해 있다.

마을 한 가운데로 다슬기와 가재가 사는 1급수 시냇물이 흘러 인상적이다. 전형적인 시골의 정취가 가득한 도래수마을은 임진왜란을 피해 진주강씨 강충남(姜忠楠)이 이곳에 터를 잡기 시작하면서 형성되었다. 마을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듯 마을 진입로 곳곳에는 노거수가 산재해 있다. 도래수마을은 진주강씨 집성촌으로 현재 마을 인구는 53가구, 총 83명이다. 65세 이상 고령층이 51%를 차지하고 있으며, 여성 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공동체조직의 전승 실태

도래수마을의 위친계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공동체조직이라 정확한 설립 시기는 알 수 없으나 2009년에 단절되었다가 최근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모여 다시 계를 만들었다. 원래 위친계는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대처하기 위한 자식들의 모임이다. 현재 자식들은 타지에 나가있는 경우가 많지만 마을에 상을 당하면 귀향하여 위친계 활동을 한다. 위친계의 주목적은 전통 장례 절차대로 상가의 일을 봐주고 상여꾼 등의 역할을 맡아 장례가 차질 없이 치러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예전에는 마을인력으로 동원되기도 하였다.

위친계는 임원인 계장과 총무를 포함하여 24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원의 대부분이 40~50대이며, 모두 65세 미만이다. 회원 24명의 부모에 해당하는 48명이 회비를 납부한다. 부모 1명당 회비 1회에 5만원씩 연간 4회로, 회원 1인당 연간 20만원을 납부하며, 총 금액이 2000만원이 될 때까지 모을 계획이다. 회원 중 상을 당하면 115만원을 위친계에서 상주에게 지급한다.

물가가 오르는 것을 감안해 2~3년 단위로 지급 금액을 상향조정하고 있는데 회비를 내는 기간이 변경될 뿐 회비의 금액은 변경하지 않는다. 회원 중 자녀는 타지에 사는 경우가 많지만 부모는 대부분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자식이 정계원, 부모는 준계원이지만 현재는 인원이 많지 않아 자식과 부모가 같이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요즘은 상여를 메지 않지만 새로 제작된 상여틀은 존재한다. 예전에는 마을에서 초상을 치르면 3일장을 했기 때문에 계원(마을주민)들이 상가에 상주했었다. 만약 모임 등 계의 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했다.

자식들 가운데는 위친계 이외에 상업적 상조회나 직장 상조회 등에 가입한 경우도 있지만, 마을에서는 상조회보다는 위친계를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계원들의 장지는 모두 각자 관리하고 있다. 마을에 공동산이 있으나 묘지로 쓰지 않고 땔감을 얻기 위한 용도로 이용했다. 위친계의 모임은 1년에 한 번으로, 양력 3월 31일에 서로 모여 안부를 묻고 재무결산과 식사를 한다.

영산강 시원(始原)에 자리한 자연친화마을

도래수마을은 영산강의 시원(始原)인 용소폭포와 노령산맥을 형성하는 추월산, 용추산, 강천산, 산성산(금성산) 등과 두루 접해있다. 마을 주변으로 산이 높게 솟아 있고 마을 중앙으로 깨끗한 냇물이 흐른다. 이 냇물은 마을 앞 입구에서 가마골의 용소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합류하여 담양호를 거쳐 영산강으로 흐른다. 마을 북쪽으로 경사등(뱀 형국), 구시물등, 가래봉, 구승맥, 옥녀단자혈 등의 산자락이 이어지고, 동남쪽으로 분재실과 통사곡이라는 큰 골짜기가 길게 이어지면서 주거지와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두 골짜기를 만들어낸 동남쪽 산자락에는 장군봉, 관천봉, 검바위, 기초봉, 투구봉, 학바위봉이 우뚝 솟아 있다. 마을 남쪽으로 하늘에서 옥녀가 내려올 때 타고 온 용이 잠들어 있는 비룡등길이 길게 이어져 있고, 산등성이 끝자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개구리 형국의 독산(독뫼)이 자리 잡고 있다.

400여 년 전 임진왜란 당시 전북 전주 완주군 초곡동에서 진주강씨 강충남의 가족이 피난을 와서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고 정착하였다. 이후 최씨, 이씨, 김씨, 손씨, 서씨, 권씨, 정씨, 조씨, 박씨, 임씨 등 여러 성씨가 모여 살게 되었지만, 여전히 진주강씨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분재실 골짜기 동쪽 끝으로 옥녀단자혈이라고 불리는 명당자리에 진주강씨의 선산과 제각이 건립되어 있다.

도래수마을은 2005년 농촌진흥청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2006년부터 시작한 농촌전통테마마을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2009년에는 전국에서 가장 살고 싶은 마을 100선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하였다. 마을사람들은 체험마을 운영과 마을 발전을 위해 테마를 잡고 프로그램을 짰다. 여러 마을을 견학하기도 하면서 뜻을 모아 동참하여 현재 40가구가 체험마을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마을에는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대부분 여성들의 몫이다.

주요 체험 프로그램은 농작물을 파종하는 4월의 봄나물캐기와 씨앗뿌리기를 시작으로 여름에는 대나무물총만들기, 솥뚜껑전붙이기, 옥수수따기가 이어지고, 가을에는 고구마캐기, 단감따기, 인절미 떡메치기, 벼훑기, 소여물먹이기, 마람올리기 등 다양한 활동이 이뤄진다. 또한 담양의 특색을 살린 체험프로그램으로 대통밥과 죽순요리 만들기를 비롯하여 감장아찌, 도토리묵 등 향토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