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 공동체문화의 가치와 활용


동제·망제·장승제·충제를 지내는 덕병리 대동계_전남 진도

2020. 10. 5 오후 3:20
  • 전남 진도군 군내면 덕병
  • 조사일 : 2016. 5. 18.

마을의 유래와 현황

덕병리는 ‘덕저리’, ‘떡저리’, 또는 ‘덕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용인리, 한의리를 합하여 덕병리라 하고 군내면에 편입되었다.35) 마을 서쪽에는 달마산(134m), 남쪽에는 고두산(252m)이 있다. 동쪽은 송산리, 서쪽은 한의리, 남쪽은 고두산, 북쪽은 용인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연산리에서 갈라진 도로가 마을을 지나 간재를 넘어 진도읍의 서쪽으로 지난다. 동쪽으로는 연산리에서 18번 국도가 진도대교를 지나거나 진도읍과도 쉽게 이어진다.

1400년경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해 밀양손씨의 후손들이 이주하여 정착하였으며, 경주최씨, 신안주씨가 뒤를 이었다. 1445년 마을 뒷산에 국영목장이 개설되고 둔전으로 간척사업이 이뤄졌던 것으로 짐작된다. 목장을 위해 신안주씨가 들어오고 간척을 위해 밀양손씨가 정착했다고 한다. 인구가 가장 많을 때는 160여 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83가구에 150여 명이 살고 있다. 연령대는 65세 이상이 60명, 40~50대가 30명이다.

전통 공동체조직의 전승 실태

덕병리 대동계의 형성에 대한 기록이나 마을 사람들의 기억은 없으나 방조제 관리를 위한 동답의 존재, 농사의 소출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충해를 피하기 위한 제사인 충제 등을 살펴보았을 때 오랜 역사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에서는 대동계 또는 동계로 호칭하며 마을의 행사와 대소사를 관리한다. 일반적인 대동계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대동계에서 운영하고 있는 마을행사는 동제, 망제, 장승제, 리민의 잔치, 충제 그리고 총회가 있다. 임원은 이장, 운영위원(개발위원 6명), 새마을지도자, 부녀회장, 총무, 감사(2명), 반장(5개 반 각1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임기는 2년이다.

행사 비용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구전’으로 걷었지만 요즘은 번거로워서 마을기금으로 모두 충당한다. 인구전이란 마을주민세의 일종으로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제사비용을 산정하고 주민수로 나누어서 주민들이 개별적으로 납부하는 돈을 말한다. 동계 재산으로는 현금잔고와 동답이 있다. 현금수입은 전년도 이월금과 마을 행사 때 기부금으로 받는 돈, 폐비닐을 수거하여 모은 돈 등이다. 동답(논 4마지기)은 방조제를 관리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방조제 건설 이후 3마지기로 줄었으며, 현재는 새마을지도자가 저수지 물 관리를 위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1년 예산은 일반적으로 경로잔치 600만원, 동제·망제·장승제 30~50만원, 마을잔치 300만원으로 약 1천만 원이 소요된다.

공동체조직의 주요 활동과 변화양상

이 마을의 큰 행사는 1년에 다섯 차례 개최된다. ① 대보름의 동제·망제·장승제 ② 4월 첫째 주 토요일의 리민의 잔치 ③ 음력 6월 1일의 충제 ④ 12월 22~30이 사이에 열리는 동계 ⑤ 1월 초순의 마을 총회이다.

동제는 당할머니 동제당에서 지낸 후 지신밟기, 우물 옆에서 샘굿 후 망제(거리제), 그 후에 장승제를 지낸다. 장승제에서는 소뼈를 장승에 걸어두는 의식을 행한다. 대보름 하루에 동제, 망제, 장승제를 모두 진행한다. 리민의 잔치는 덕병리 주민들이 모두 모여서 잔치를 벌리는 것으로 주민화합의 목적을 가진다.

충제는 해충피해를 막기 위한 제사로 음력 6월 1일에 지낸다. 요즘은 농약을 치지만 예전에는 “충이 들면 파농”했기 때문이다. 충제는 달마산에서 산신령에게 지내는데 제사를 지내기 전에 부정을 피하기 위해 제관은 부정이 없는 사람으로 뽑는다. 제물은 닭, 술, 과일을 올리고 축문을 읽는다. 제사 비용은 동계에서 충당한다. 요즘도 충제 때는 아무도 들녘에 나가지 못하며, 인근 마을에도 협조를 구하여서 모두 농사 관련 작업을 중단한다. 백중날 행사는 지금은 없어졌는데 보리개떡을 해먹고 윷놀이를 했었다.

회의는 동계와 마을총회가 있다. 동계는 12월 22~30일 사이에 이장과 임원을 선출하고 결산과 감사보고 후 마을잔치를 하는 것이고, 마을총회는 1월 초순에 동계에서 선출된 새로운 임원이 주도하여 준비한다.

구성원의 관계를 확인·유지·강화하는 공동의례

덕병리의 당집은 마을에서 북쪽으로 해안을 따라 500m 떨어진 산등성이에 위치해 있다. 원래 당의 위치는 이곳이 아니었다. 한국전쟁 이후에 어느 한 집안에서 본래의 당 터를 묘로 쓰고자 큰당나무를 베어냈는데 그 뒤 해당 집안은 물론이고 마을도 운세가 좋지 않자 마을주민들이 합심하여 현재의 위치에 향나무를 심고 당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잡풀과 소나무로 우거진 당은 가로 350cm, 세로 310cm, 높이 50cm의 돌담이 둘러 싸여 있고, 내부에는 작은 향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인적 드문 곳에 자리한 당나무 밑동에 흰색 창호지가 접혀져 끼워 있고, 그 앞에는 쌀 한 되 가량이 들어가는 ‘오가리’(항아리)가 창호지로 봉해져 뚜껑이 덮인 채 놓여 있다.

마을 동제의 특징은 여성신인 당할머니에게 가장 먼저 제를 올린다는 것이다. 마을의 공동의례는 당제, 산신제, 샘제, 노신제의 순으로 진행되며, 지모신 격인 당할머니에게 먼저 제를 모신 후 ‘산신바우’라고 불리는 제장에서 산신제를 모시고, 가뭄에도 샘이 마르지 않고 항상 마을에 물이 풍족하기를 기원하는 ‘샘제’를 드린 후 ‘마을 잡귀 범하지 않고 편하게 해 달라’는 내용의 축원을 담은 ‘노신제’를 끝으로 마무리 된다.

이처럼 동제는 생활의 터전을 같이 하는 마을 사람들이 자기 마을을 수호하는 것으로 신봉하는 신에게 일정시기에 행하는 공동체 의례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표출하고 신과의 의사소통을 통하여 인간의 기본적 소망인 안녕과 풍요를 성취하려 하며, 집단적 생존을 저해하는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재앙과 액을 막으려 한다.

마을의 수문장이자 수호신인 ‘장성’

덕병마을에는 ‘진살등’이라고 부르는 곳에 언제 세웠는지 모르는 2기의 장승이 서 있었다. 이곳은 진살뫼들, 진살등, 진산동이라 불리며, 마을로 들어오는 살기를 막아준다고 믿고 있다. 1989년 장승을 도난당하고 1993년 마을에서 새로 장승을 세웠다. 모양은 다르지만 글자는 똑같이 새겨 넣었고, 동제 때 장승에게 제례를 올리는 것도 계속하고 있다. 이 장승을 ‘장성’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장승에는 한자로 장성(長城)이라는 글자가 뚜렷이 새겨져 있다.

덕병마을에서는 망제(望祭)를 모시면서 장승의 목에 소의 턱뼈를 걸어둔다. 예전에 마을에서 소를 잡아 사용했을 때는 장승에 소의 피를 발랐다고 한다. 턱뼈를 거는 까닭은 잡귀가 그것을 무서워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진살뫼들의 서쪽에 서 있는 장성은 ‘남장성’으로 불리며, 머리에 16cm 높이의 탕건 모양의 관을 쓴 모습이다. 두툼하면서도 길쭉한 얼굴에 눈망울과 코는 불쑥 튀어나왔고 귀는 부처님의 귓불처럼 목덜미까지 축 늘어져 있어 전체적으로 입체성이 강조된 조각이다. 다만 눈썹과 입은 형태만을 새겨 놓았다. 남장성의 전면에는 ‘대장군’이라는 석문이 새겨져 있다. 전체적으로 풍기는 인상은 근엄하고 인자한 남성상을 연상케 한다. 동편의 장성은 ‘여장성’이라 불리며 남장성보다는 훨씬 온화한 느낌을 준다. 머리는 훤칠하고 높으며 이마에서부터 이어지는 기다란 코가 입체감 있게 표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