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굿과 단오서낭제를 지켜온 매지리 회촌 대동계_강원 원주

2020. 10. 5 오후 2:24
  • 강원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강원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 조사일 : 2016. 4. 14.

마을의 유래와 현황

회촌(檜村)마을은 행정구역상 원주시 흥업면 매지3리에 위치하며, 수려한 백운산(1987m) 서쪽 자락 분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은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매지농악을 비롯한 강원도 특유의 민속놀이가 잘 전승된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 마을에 전나무가 많다고 해서 ‘전어치’라 불리기도 했다.

회촌마을은 250여 년 전에 형성됐을 것으로 추측되며 현재 39가구 98명의 주민들이 모여살고 있다. 마을주민들은 일제강점기에도 단오제를 통해 전통을 지켜왔으며, 1970년대 초반까지 화전(火田)이 성행하면서 마을 규모가 70~80호까지 확대되기도 했다. 이런 사회변화 속에서 마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과거 마을 사람들은 미촌을 지나 한촌, 무수막, 밤골을 거쳐 흥업, 서곡, 남송을 지나 원주시내에 도착하려면 무려 6시간이나 걸렸지만, 1970년대 마을 앞으로 2차선 포장도로가 생기면서 버스와 자동차를 이용해 쉽게 마을 밖으로 드나들 수 있었다.

공동체조직 전승 실태

매지리 회촌마을 대동계는 마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공동체조직이다. 현재 마을에 거주하는 40가구가 모두 대동계 회원(가구당 1명)이며, 반장(행정), 부녀회장, 청년회장, 노인회장, 매지농악보존회장이 당연직 임원으로 참여한다. 회비는 입회비만 있으며, 행사때마다 돈을 모아 운영하고 있다. 회의, 재무 기록을 남기고 있고 이를 계장이 관리한다. 총회는 음력 10월 15일에 개최하며, 이 자리에서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고 재무를 정산한다. 총회 이외에 수시로 반상회를 소집하며 현재 계원은 65명으로 65세 미만은 15~20명 정도이다. 마을 총회와 마을의 주요행사인 단오서낭제(동제)와 대보름축제는 부녀회, 청년회, 노인회, 매지농악보존회 회장이 역할을 분담하여 치르고 있다.

마을축제인 서낭제는 일제강점기 때도 중단되지 않았다. 서낭제에서는 마을의 무사안녕을 빌고 집집마다 소지(燒紙), 소원을 빌기 위하여 흰 종이를 태워 공중으로 올리는 일)를 올려준다. 마을의 풍물패는 1940년대 이전부터 활동해왔으며, 현재 보존회장을 맡고 있는 강○○씨는 5∼6살 때부터 자연스럽게 농악(풍물)을 배웠다고 한다. 풍물패는 1950년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기물이 소실되어 잠시 활동을 멈췄다가, 1959년 말 퇴비경진대회에서 1등 상품으로 풍물악기를 받아 활동을 재개했다. 강성태 씨에 따르면 1982년부터 원주에 있는 대학생들(상지대, 연세대, 원주대)이 소문을 듣고 농악을 배우러오기 시작했는데, 정식으로 배운 것도 아니어서 가르치는 게 어려웠지만 오랜 기간 동안 하다 보니 제법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게 되었다고 한다. 1993년에 주민들이 뜻을 모아 매지농악보존회를 만들었으나 현재는 고령화로 인해 참여할 수 있는 주민이 없어 마을주민들뿐만 아니라 원주시민들도 매지농악보존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을의 전통문화는 매지농악보존회와 대동계를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마을에서는 달맞이축제(달집태우기), 단오서낭제, 옥수수축제, 김장축제 등 사철 다채로운 세시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매지농악전수관은 사회적기업 한국전통예술단 ‘아울’이 위탁운영하고 있다. 보존회 직원은 20∼30대 젊은이 20명 정도이며, 대부분 원주 시내에서 출퇴근한다.

회촌마을의 다양한 사업에는 대동계 회원이 직접 참여하며, 이들을 중심으로 하부 단위의 조직이 결합하여 마을행사를 진행하는 게 특징이다. 축제와 연계하여 지역 정체성을 살림으로써 관광소득을 올리고 마을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마을의 난개발을 막고 자연경관이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40호 밖에 되지 않는 준산간지역 농촌이지만, 젊은 작가들의 창작공간인 토지문화관, 문화관광부 사업으로 전국문화원연합회가 15억을 들여 조성한 문화역사마을, 농촌진흥청 지원사업인 농가맛집 등 다양한 문화공간을 갖추고 있어 어느 마을보다도 활기가 넘친다.

마을의 최고 의결기구 대동계

회촌마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대동계가 잘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동계는 마을의 중요한 행사나 사업방향을 논의하고 의결하는 자치조직이다.

고○○(63) 씨는 “마을에 안건이 있으면 임원회를 먼저 소집합니다. 거기서 나온 의견으로 전체회의를 하기도 하고 임원들이 결정하기도 하죠”라고 말한다. 그는 10년째 회장을 맡아오고 있는데, 모든 일을 대동계의 의결에 따라 처리하기 때문에 주민들의 불만이 거의 없다고 한다. 마을에 거주하는 모든 가구는 대동계에 소속되어 있다. 고 씨는 “외지에서 들어온 가구가 11~12가구 정도 될 거예요. 오래된 분은 한 10여 년 되셨고, 작년과 올해 이사 온 분들도 있어요. 모두 대동계회원이 되도록 유도합니다. 싫다고 하시는 분들이 별로 없더라구요. 마을행사가 1년에 5~6회 정도 되는데, 다들 참석해서 도와주시지요.”라고 현재 대동계의 상황을 설명한다. 또한 그는 “기록은 없지만 대동계가 내려온 지 한 200년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옛날 어르신들은 회비를 조금씩 걷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회비를 걷지 않아도 운영이 됩니다. 농악으로 전국대회 나가서 마련된 기금이 있고, 마을사업으로 남은 이익금을 모아두었거든요. 많지는 않지만 공공기금을 낼 만큼은 되지요.”라며 대동계의 성과를 설명한다.

10무(無) 마을만들기를 통한 생명공동체

1970년대 정부의 화전정리사업으로 원래 회촌에 거주하던 주민들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외지로 이전해 마을이 축소됐지만, 남아 있는 주민들은 이 위기를 극복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마을회관을 비롯한 공동시설을 확충하고, 성황제와 대보름 행사를 통해 전통문화를 계승하려는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마을주민들은 이후 친환경농법에도 눈을 돌렸다. 산촌지역에서 농사를 지으면 경작 작물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없는 생태적 조건의 한계와 여의치 않은 농가 소득 등 각종 어려움에 맞닥뜨리게 한다. 마을사람들은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수익 부가가치를 가진 친환경농업작목반을 조직하였다. 이와 함께 지난 1999년에는 강원도 특수시책으로 추진된 새농촌건설운동에 참여하여 ‘분리 의식 없는 마을’, ‘이기심이 없는 마을’ 등 ‘10무(無) 마을만들기를 통한 생명공동체’를 구상하고 실행한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토박이 청·장년층이 마을 발전을 위해 노력해오면서 점차 성과를 맺고 있다. 예를 들면 2000년 친환경농법 시작 후 참여 가구 수가 확대되고, 품종도 옥수수에서 콩, 고추 등으로 확대되었다. 이후 유기농유통업체인 한살림과 계약재배를 시작함으로써 농가소득이 점차 늘어갔다. 이와 함께 2008년에 시작된 역사문화마을만들기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하고자 마을 청·장년들이 중심이 되어 2009년 회촌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에코문화사업단과 결합하여, 2012년에는 토요영농조합법인이라는 사업조직을 새로 만들었다

매지농악의 중요한 전승판, 4개의 마을축제

1993년에 처음 마을단위의 소규모 달맞이굿을 시작할 때만 해도 외지에서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후 달맞이굿이 점차 유명세를 타고 보러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자, 1998년부터 ‘정월대보름 회촌달맞이축제’로 개칭하고, 방문객을 위한 편의시설 확충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축제를 보러온 방문객이 식사와 휴식,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을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2002년에는 매지농악보존회와 대동계가 의논하여 그간 보존회 중심으로 진행해 오던 축제를 대동계로 이양하였고, 대동계에서는 달맞이축제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마을 사람들과 보존회원으로 구성된 회촌달맞이축제위원회를 조직하였다. 현재 달맞이축제는 대보름 당일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진행되며, 여기에 참가한 사람들은 제기차기, 연날리기 등의 민속놀이와 매지농악 판굿공연, 줄다리기, 달집태우기 등에 참가할 수 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회촌마을 전통민속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매년 여름 열리는 옥수수축제는 아직 정착 과정이고, 단오서낭제는 의례와 오락을 이원화하여 열리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에게 큰 수익이 돌아가지는 않는다. 반면, 김장축제와 달맞이축제는 축제를 통한 수익창출이 많은 편이다. 달맞이축제는 농한기에 열리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의 축제 참여율이 높고, 방문객을 대상으로 음식을 판매하여 수입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회촌에서는 전통 행사인 단오서낭제가 계속되고 있기도 하다. 일제강점기까지 단오서낭제는 여러 무당이 참여하는 별신제 형태로 전승되었다. 그 뒤 한국전쟁 이후부터는 풍물굿과 유교식 독축고사가 결합된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단오 즈음은 농사일이 바쁜 농번기임에도 대부분의 마을사람들이 참석하고 있다. 대동계에서는 단오 전날인 음력 5월 4일을 마을의 공식 휴일로 정하여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자치 규약으로 정해놓았다. 단오서낭제의 원활한 진행과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함이다.

마을축제 기록에 따르면 2012년 단오서낭제의 경우, 음력 5월 4일 밤에 마을 청년들이 제관 집에서 마련한 제물을 여러 대의 경운기에 나누어 싣고 서낭당으로 올라갔고, 밤이 깊어지자 성황당 앞에서 농악보존회원들과 마을주민들이 뒤섞여 신명나는 풍물판을 벌였다. 자정이 가까워졌을 때 서낭당 옆 삼신목 아래에 2일 전에 묻어둔 항아리에서 조라술을 꺼내 와서 체에 거른 뒤 제단에 진설하였다. 제물 진설을 비롯한 서낭제 준비가 완료되면, 밤 12시부터 제관 일행이 헌작(獻爵), 고축(告祝), 음복(飮福), 소지 올리기 등의 순서로 제를 주관했다. 주민 40가구의 소지를 올리는 자리에서는 매지농악보존회 전수관장 이○○과 마을 사무장 최○의 소지도 올려, 마을의 외지인들도 점차 마을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음력 5월 4일에는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공동의례가 치러지고, 단옷날에는 방문객들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개인, 가족 단위 및 단체 방문객들은 매지농악전수회관 주변에서 단오특별공연, 단오 겨루기를 비롯한 여러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한다. 단오특별공연으로는 소고춤, 상모판굿, 경기민요, 매지농악 공연 등이 열리고, 이밖에 씨름, 그네타기, 줄타기, 투호, 제기차기, 버나 돌리기, 12발 상모돌리기 등의 민속놀이와 전통문양 손수건 만들기, 창포물에 머리감기, 단오부채 만들기, 떡메치기 등의 참여 프로그램 등이 다채롭게 운영된다.

대동계를 중심으로 마을 축제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

이 마을의 축제는 관공서나 특정 집단에 의해 한꺼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매지농악보존회와 마을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하나 둘 정착된 것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현재 회촌마을 사람들은 내외부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며 매지농악을 전승하고 있다. 비록 농악을 연행하는 이들은 대부분 마을 외부인들로 바뀌었지만, 아직까지 농악은 회촌마을의 전통적인 기반 위에서 전승되고 있다.

특히, 매지농악을 전승하고 있는 젊은 사람들은 10여 년 전부터 마을사람들과 함께 여러 사업을 진행하면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마을사람들도 점차 매지농악보존회원들을 마을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있다. 보존회원들은 마을사람 대신 다양한 형태의 농악판을 만들어가고 있고, 그들 중에는 앞으로 자녀들의 교육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마을에 들어와 살고자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점에서 회촌마을 사람들과 매지농악보존회는 새로운 의미의 공동체를 구성해나가고 있으며, 향후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