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 공동체문화의 가치와 활용


오당산과 농악기_전남 구례군 구례읍 신월리

2020. 10. 5 오후 4:38

마을 현황

  • 세대와 인구: 104가구 180명.
  • 역사와 유래: 신촌의 옛 이름이 잔수여서 잔수(潺水)라고 부른다. 잔수마을 옛 이름이 『세종실록지리지』에 처음 나온다. 『대동지지』에 의하면 원래 이름은 찬수마을이라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행정적으로 신월리 신촌마을이다. 
    연대를 알 수 없는 대홍수 이후 유랑민들이 정착하여 새롭게 마을을 형성했다고도 전하며, 1914년 일제강점기 때 행정구역개편을 하면서 신월리 신촌마을로 개칭하여 구례면에 편입되었다. 신촌마을은 구례의 서쪽 입구, 섬진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섬진강 여울물이 소리 없이 잔잔하게 흐른다고 하여 수동이라 했으며, 속칭 찬수라고도 불렀다. 섬진강을 끼고 도는 순천과 곡성을 잇는 국도 17번 도로를 따라가다 구례구역 앞으로 난 구례교를 건너면 구례에 이르는 18번 국도가 시작된다. 바로 그 구례구역에서 구례교를 지나 처음 맞는 마을이 신촌마을이다. 조선 후기에 청송심씨가 정착하였고, 그 후 추씨, 김씨, 이씨 등이 들어와 거주하면서 마을이 성립되었다. 한말에는 계사면 소재지로 봉서리, 원방리, 신월리, 계산리, 논곡리 일원을 관할한 중심지였다.
  • 주요 소득원: 벼, 감.
  • 마을의 특징: 고려시대 때부터 잔수마을에는 역, 원, 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잔수역, 잔수원, 잔수진은 모두 관에서 운영하던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전라좌도 남원도호부의 오수도찰방에 소속되어 있었다. 한 마을에 역, 원, 진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교통의 요지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지금도 이러한 역사적 중요성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37년 마을에 구례와 순천을 잇는 구례교 다리가 놓이면서 나루는 없어졌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면 순천 쪽으로 구례구역이 있어서 기차가 운행 중이다. 교통은 지금도 매우 편리한 지역이다. 2011년도에는 순천에서 호남고속도로를 잇는 고속도로가 개통되었고, 예전처럼 더 이상 뱃길은 이어지지 않지만, 국도와 철로 그리고 고속도로가 이 마을을 지나고 있다.

마을공동체 전통유물 전승실태

[마을 민속과 문화 환경]

잔수마을은 오래 전부터 나루터를 중심으로 역, 원이 설치돼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잔수농악은 섬진강변 교통의 요지에 자리한 마을의 사회문화적 기반 위에서 전승되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역원이 있었고, 옛 고을터라고 전할 만큼 남다른 사회경제적 배경이 있어서 그것이 농악의 전승배경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잔수농악의 전승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은 걸궁 활동이다. 농악 연희자들은 마을 내 활동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 걸궁을 다니거나 농악대회에 참가함으로써 외부에 잔수농악을 소개하기도 했다. 걸궁 활동은 잔수농악이 활력을 유지해온 배경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마땅한 일거리가 없는 시기에 걸궁을 다녀오면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었으므로, 주민들이 농악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그래서 음력 11월부터 두 달 정도 농악 연습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었다. 걸궁 전에 이뤄지는 강습에는 마을주민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잔수농악 전승에서 특이한 부분은 농악계의 존재이다. 농악대원들은 치배들 간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계를 구성해서 운영해왔다. 매년 네 차례씩 주기적인 모임을 갖고, 계원들의 애경사 부조를 해왔다. 계책에 의하면 1954년부터의 활동이 문서화 되어 있다. 처음에는 풍장계라고 불리다가 나중에는 농악계 또는 농악위친계로 이름이 바뀌었다. 본래는 농악대원들의 유대 강화에 목적이 있었으나, 계원이 사망한 후 가족이 자동으로 승계하는 경우가 많아 많을 때는 35명까지 이르렀다. 음력 3월, 6월, 9월, 12월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있으며, 잔수농악 전승과 보존에 힘을 쓰고 있다. 현재 농악 정회원이 45명이고, 일반 특별회원이 20명으로 모두 65명의 잔수농악 회원이 있다. 

[공동체 민속 유물]

  • 당산제: 섣달 그믐날 11시경 당산 5곳에 유교식으로 제를 지낸다. 제주 2명을 선발하는데, 생기복덕을 고려하여 깨끗한 사람으로 선정을 한다. 현재는 마을이장과 개발위원장이 제관의 역할을 맡아서 한다. 제주 2명이 앞서고 마을이사 7명이 함께 동참하여 당산제를 지낸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하루 전부터 외출을 금하고 집 앞에 황토를 뿌리고 대를 꽂아 금줄을 친다. 음식으로는 팥시루떡과 전, 돼지머리, 술을 올린다. 제주로 사용할 술은 5일 전부터 빚는데, 제주로 사용할 것은 따로 덜어놓고 나머지는 동네사람들이 함께 나누어 먹는다. 2년 전부터는 음식을 직접 장만하지 않고 순천이나 구례에서 금액에 맞춰서 주문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여자들은 제의 참여가 금지되어 있다. 소지에는 아무런 글도 쓰지 않고 제 지내는 날 밤에 제관이 구음으로 “동쪽 당산님전 비나이다.” 라고 축원하면서 올린다. 당산제 지내는 순서는 북쪽 → 서쪽 → 남쪽 → 동쪽 → 중앙 순으로 진행이 된다.
  • 당산제만굿: 정월 초사흗날 당산 앞에서 풍물패를 앞세워 당산에 인사를 올리며 “신년도 모든 액은 걷어 들이고 행운을 가져다 주십시오.”라는 소원과 함께 굿을 시작한다. 당산제와 마찬가지로 북쪽 → 서쪽 → 남쪽 → 동쪽 → 중앙의 순서에 따라 제를 지낸다. 당산제 지낼 때와 같이 왼새끼를 꼬아 금줄을 두르고 황토를 뿌리면 성역표시가 된다.
    당산제만굿이 끝나면 바로 마당밟이가 시작된다. 마을회관 앞에서 굿을 치고 가가호호 방문을 하면서 마당밟이를 해준다. 당산제만굿은 마을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고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어 축제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 줄긋기: 잔수마을의 민속놀이 가운데 하나인 줄긋기는 줄다리기 놀이와 같은 것이다. 집집마다 짚을 내놓아 거두어들인 양에 따라서 줄의 굵기와 길이가 결정된다. 섬진강 수시내천을 중심으로 물아래 마을과 물위 마을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는데, 잔수마을은 물아래 마을이다. 줄긋기에 필요한 줄은 물위마을과 물아래 마을에서 각자 보름 안에 꼬는데, 상대편의 줄을 볼 수 없도록 서로 단속을 철저히 한다. 줄의 길이는 70∼80m는 족히 되고 일자형에 손잡이를 달고 고를 만들어 줄과 줄을 잇는다. 양판 3승제로 4개의 팀을 만들어 2팀씩 묶어 즐긋기를 하는데 진편이 이긴 편에게 술을 대접한다. 줄긋기를 통해 마을간 단합과 흥을 돋우는 계기를 만든다.
  • 달집태우기: 잔수마을을 싸고도는 배서리 섬진강변에서 대보름 밤에 달집태우기가 행해진다. 달집은 농악 회원들이 모두 참여하여, 대나무 트럭 2대 분량과 소나무 트럭 3대 분량을 산에서 베어와 만든다. 굵은 소나무를 삼발이 형태로 고정시키고 중심에 대나무를 세워 새끼줄로 고정시킨다. 틀이 형성되면 그 둘레에 솔가지로 나뭇단을 만들어 빙 두르고 원추형태를 잡아가면서 넘어지지 않도록 새끼줄로 묶는다. 솔가지를 두른 단 밖으로 대나무를 빙 둘러 세워가면서 달집 모양을 만들어 나간다. 달집이 완성되면 금줄을 두르고, 한지에 소원을 적은 소지를 금줄에 꽂아 놓는다.
    이후 마을 농악대가 기를 앞세우고 달집을 세워놓은 장소에 도착한다. 상쇠의 지시에 따라 굿을 치기 시작하고, 달집태우기에 앞서 돼지머리를 올리고 제를 지낸다. 구례읍장, 개발위원회, 잔수농악회장, 이사들의 축문이 끝나고 다시 한바탕 농악굿을 치고, 제에 참여한 장들이 횃불을 들고 점화를 한다. 일순간 달을 집어 삼킬 듯 불길이 하늘로 치솟는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할머니들은 액풀이를 하기 위해 딸이나 며느리의 헌옷가지를 불에 던져 넣거나 부스럼을 닦은 헝겊을 달집과 함께 태운다.
  • 화전놀이: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의 명칭이 잔수(潺水)였으나, 지금은 섬진강이라 명칭이 바뀌었다. 잔수마을은 구례에서 순천으로 넘어가는 교통의 요충지로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는 배를 띄워놓고 배 위에서 마을주민들이 풍물을 치며 춤과 노래로 하루를 맘껏 즐겼다. 음식은 부추와 고추를 썰어 넣은 부침개와 팥시루떡, 감나무 잎에 떡을 싸서 만든 기장떡 등을 만들어 먹었다. 때로는 계절에 나는 밀개떡, 보리개떡, 쑥개떡을 장만한다. 마을이 풍수적으로 배형국이어서 마을에 구멍을 뚫으면 배가 가라앉는다는 이야기 때문에 마을에 샘을 파지 못하고, 섬진강 물을 길어다 먹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마을 변두리에 있는 샘을 이용하였다.

  • 칠월백중놀이: 칠월 백중(음력 7월 15일)이 되면 벼가 고개를 숙이고 들판에 노랗게 황금물결을 이루기 시작하면서 누구집의 농사가 잘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이때 마을의 머슴들이 농사가 잘 된 집의 머슴을 세다리(사다리)에 태우고 주인댁으로 가서 그 집주인을 함께 사다리에 태운다. 이는 농사가 잘되었으니 주인댁이 한 턱 걸게 내라는 것으로 동태국을 대접받으면 족하다고 말한다.
  • 씨름대회: 팔월 추석에 섬진강 모래밭에서 한판승부가 벌어지곤 했다. 씨름대회는 잔수마을뿐만 아니라 이웃마을에서도 출전할 만큼 참여인원이 많고 규모가 컸다. 이 마을의 주조장에서 술을 내고, 이긴 사람에게는 마포1필의 부상이 주어졌다. 때로는 쟁기, 홀태가 부상으로 주어지기도 하고 시대에 따라 그릇이나 솥 등의 살림을 장만할 기회가 되기도 했다.
  • 구월귀일놀이: 중구(음력 9월 9일)에 마을 머슴들이 중심이 되어 마을 마당에서 농악기 특히 장구를 허리 뒤로 메고 각자의 재능을 맘껏 흥으로 풀어낸다. 중구에는 나락이 잘된 집에서 한 상을 차려낸다. 나락이 잘된 집은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정한다. 이 마을은 좌도 농악의 계보를 잇고 있으며, 승주, 비촌, 압록 등에서 잔수마을 풍물을 배워 갈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