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 공동체문화의 가치와 활용


서낭제와 당숲을 지켜온 문곡리 하늘샘마을 유사계_강원 영월

2023. 2. 10 오전 11:59
  • 강원 영월군 북면 문곡2리
  • 조사일 : 2016. 4. 12. (정명철 외, 『한국의 마을숲 ①경기·강원』, 2015)

마을의 유래와 현황

문곡리(文谷理)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문포’와 ‘가느골’이란 자연마을 이름을 한 글자씩 조합해 만든 행정지명이다. 문포는 국도 31호선이 영월, 평창, 정선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위치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면소재지였으나 광복 이후 인근의 마차리로 면소재지가 옮겨갔다. ‘가느골’은 가느다란 골짜기를 말하며, 강구에서 문포로 가는 옛길이 드넓은 들판을 따라 가늘고 길게 뻗어 있어 붙은 이름이다.

하늘샘마을은 가느골의 새 이름이다. 이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굴물’(굴샘) 또는 ‘용천수’라 불린 샘이 있었는데 수량이 풍부하여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으며, 이 샘 덕분에 주민들은 물 걱정 없이 벼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벼농사가 잘 되었던 이 마을은 인근에서 잘 사는 마을로 알려져 시집을 오려는 처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땅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용천수는 마을의 근원이자 생명의 젖줄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주민들은 굴물을 가리켜 “하늘이 땅에 내린 샘”, “하늘이 내려준 귀한 샘”이라는 뜻을 가진 ‘하늘샘’이라 불렀고, 새로 지은 마을 이 름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이 샘은 현재 송어양식장에서 사용하고 있다. 마을의 거주 인구는 74가구에 175명 정도이다.

공동체조직 전승 실태

하늘샘마을에는 오래전부터 ‘유사회’라는 공동체조직이 전승되고 있다. 유사회는 일종의 대동계이며, 마을사람들 모두가 회원이다. 유사회 운영진은 20명으로 도유사(총괄책임), 유사, 총무가 각 1명씩 있다. 마을이 5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어 1개 반에서 4~5명씩 돌아가면서 운영진으로 선출된다.

총회는 연중 1회 열리며 대보름 전후로 날을 받아 총회일을 결정한다. 총회에서는 지난 해 활동을 정산하고 신년 계획을 수립하며, 마을 대소사 전반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다. 입출금계, 재산계 등의 자료를 지속적으로 작성해왔으며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회의를 마치면 점심을 같이 먹고 술을 나눠먹으면서 윷놀이를 한다.

유사회를 운영하기 위한 별도의 회비는 걷지 않으며, 새로 이사 오는 사람이 있으면 따로 ‘신호전’을 받는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사 오는 사람이 없어서 신호전을 받은 적이 없다. 유사회에서는 전보다 많이 간소화되었지만 정초 성황제를 지속하고 있다. 20여 년 전까지는 논에 김매기가 끝나면 호미씻이 행사를 크게 벌이기도 했다.

공동기물로는 농악기가 남아 있다. 50여 년 전까지는 30명 이상으로 구성된 농악대가 활발하게 활동하였는데, 현재는 농악을 칠 사람이 없어 유지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손으로 모를 심을 때는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쓰인 기를 논에 꽂아놓고 농악대가 풍물을 쳤다.

서낭당숲과 성황제를 보존해온 유사회

이 마을에는 다른 마을에서 보기 힘든 아름다운 마을숲이 있다. 마을 앞 부곡교를 지나면 앞으로 보이는 숲으로, 마을을 휘감고 흘러나가는 문곡천이 이 숲을 지나 급하게 방향을 바꾼다. 하천변에 형성된 것으로 보아 장마철 홍수를 막기 위해 조성된 호안림으로 보이며, 마을 앞을 가려주고 산자락의 허한 부분을 이어주는 ‘비보숲’으로 판단된다.

숲이 조성된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수령이 200년 이상 된 나무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그보다는 더 오래되었을 것을 추정된다. 주민들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나무의 수령이 450년을 넘는다고 한다. 이 숲의 규모는 3,500㎡ 정도이며 낙엽활엽교목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숲에는 지름 40∼130cm, 추정 수령 100~300년 되는 비술나무, 느릅나무, 시무나무, 말채나무 등 모두 44그루의 큰 나무들이 있다. 느릅나무과의 비술나무가 많아 주민들은 ‘느릅나무숲’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을주민들은 이 숲을 ‘서낭당숲’이라 불러왔는데, 요즘에는 ‘하늘샘마을숲’이라고 한다. 숲 북동쪽 끝자락에 서낭당이 있으며, 당집은 여섯 개의 주춧돌 위에 나무 기둥을 세운 다음 널빤지를 잇대 벽을 막았고 지붕에는 슬레이트를 올렸다. 당집 전면에는 두 개의 문이 있는데 한쪽 문은 열쇠로 잠가놓았고, 다른 문은 빗장을 걸어놓았다. 당집 내부 정면으로 선반을 올렸으며, ‘성황신위’(城隍神位)라고 적힌 위패를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이 서낭당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 과정에 사라졌다가 2001년 복원한 것이다. 서낭당 왼편에는 컨테이너박스와 정자가 있고, 앞에는 농구골대와 족구장이 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 초하룻날 밤 12시에서 1시 사이에 서낭제를 지낸다. 실제로는 정월 초이튿날 새벽에 제를 올리는 셈이다. 이전에는 제를 주관하는 유사를 선정할 때 생기복덕(生氣福德)을 엄격하게 가려 일진이 좋은 사람을 뽑았다. 마을주민은 “생기복덕은 나이를 짚어가지고 보는데, 이게 맞는 사람이어야 해. 그러니까 일상생기(日上生氣), 이중천의(二中天醫), 삼하절체(三下絶體), 사중유혼(四中遊魂), 오상화해(五上禍害), 육중복덕(六中福德), 칠하절명(七下絶命), 팔중귀혼(八中歸魂)이라고 해. 그런데 생기, 복덕, 천의 셋은 좋고 유혼, 절체, 귀혼은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아 평길이야. 그러니까 동네에서 생기복덕 좋은 사람 구하다가 없으면 이 사람들이라도 와서 지내야지. 절명이나 화해 든 사람들은 원래 여기 오지도 말라고 해, 부정탄다고. 태극기에 건곤감리가 있잖아 그것 가지고 다 보는 거야.”라고 설명한다.

지금도 유사는 부정이 없는 깨끗한 사람으로 정한다. 서낭제를 지낼 때는 유사회원 중에서 6~7명 정도가 참례한다. 이전에는 유사가 제물을 장만했으나 지금은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부녀회에 맡긴다. 제물은 돼지고기 한 근, 메 한 그릇, 떡, 삼실과, 북어포, 나물(고사리와 숙주) 등을 올린다. 예전에는 마을에서 시루떡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필요한 만큼만 사온다. 축문도 과거에는 한문으로 썼었으나 요즘에는 쉬운 한글로 쓰고 있다. 축문은 “몇 년, 몇 월, 며칠, 동네 대표 누가 성황님께 아룁니다.”라고 시작하여 “농사 잘 짓게 해 주고 풍년 들고 건강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원하는 내용이 담긴다. 제사가 끝나면 마을의 평안과 농사 풍년을 기원하는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원래 세 장을 올리는데 구경하러 나온 사람이 개인소지를 올려달라고 하면 더 올려준다. 개인소지는 보통 아들이나 손주들 잘 되게 해 달라는 내용이 많다고 하며, 몸이 안 좋은 사람이 있거나 대학입시와 승진을 앞두고 있는 경우에는 그와 관련된 소원을 빌어준다. 시대가 변하면서 서낭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서낭은 마을과 주민을 지켜주는 영검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문곡리 마을숲과 서낭당]

산촌생태마을로 새롭게 도약하는 하늘샘마을

아름드리 느릅나무가 줄지어 선 하늘샘마을숲은 오랜 옛날부터 주민들의 자부심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서낭당숲의 나무를 훼손하면 벌을 받는다고 믿고 있으며, 정성을 다해 숲을 가꾸고 있다. 정기적인 풀베기와 청소는 이 마을에서는 불문율이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숲은 마을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선사해준다.

숲 속 산책로를 따라 벤치와 정자가 들어서 있고 숲 옆으로는 그라운드 골프장과 게이트볼장이 갖춰져 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바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여가를 즐길 수 있다. 숲 밖으로 문국천 제방을 따라 아름다운 꽃길이 이어져 있어 산책하기에 좋다. 뿐만 아니라, 이 숲은 주민소득에도 도움을 준다. 마을에서는 이 숲을 기반으로 하여 농산물과 자연경관을 연계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림 같은 마을숲과 문곡천의 맑은 물, 넉넉한 인심이 외지인들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하늘샘마을은 2007년에 장수마을, 2009년에 새농어촌건설운동 우수마을, 2010년에 산촌 생태마을로 선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마을을 둘러볼 수 있는 산책로를 조성하였고 물놀이장과 식당을 갖춘 체험장, 회의실과 숙박시설을 갖춘 산촌 체험관 등을 마련하였다. 마을 안길을 따라 걷다보면 주민들이 이름을 붙인 ‘달토끼방앗간’, ‘한우물’ 등의 표지판을 만날 수 있는데 이름에 얽힌 사연까지 소개되어 있어 절로 미소를 머금게 한다. 겨울철에는 문곡천에서 ‘얼음썰매한마당축제’를 열고 있고 고사리, 고구마, 옥수수 수확 등의 농사체험도 운영하고 있다. 마을주민들은 벼농사를 비롯해 콩, 수수, 배추, 감자, 옥수수, 고추, 고구마 등의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농사 외에 송어양식장과 횟집을 운영하는 주민과 민박과 펜션을 운영하는 주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