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 공동체문화의 가치와 활용


물레방아_강원 정선군 화암면 백전리

2020. 10. 5 오후 4:02

마을 현황

  • 세대와 인구: 17가구 30명.
  • 역사와 유래: 동중 또는 동상면으로 불리다가 1909년 화암면으로 개칭되어 면사무소를 호촌리에 설치하였으며, 이후 1912년에는 군·면 폐합으로 면사무소를 화암리로 이전하였다. 1962년 고한, 사북, 직전리 등 3개리를 관할하는 사북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73년 사북출장소가 사북읍으로 승격되면서 화암면에서 분할되었다. 이곳은 1930년경 금광이 성행하여 정선군에서 전기가 가장 먼저 들어온 지역이다. 백전1리의 자연마을로는 서원기, 대지산, 정승골, 합수거리 등이 있다. 서원기는 서원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대지산은 농경지가 넓어서 붙여졌고 정승골은 고려말엽 정승이 난을 피하여 머물렀다 하여 생긴 지명이다. 합수거리는 삼척시 하장면과 벽전에서 흐르는 물이 합류하던 곳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백전리 맨 안쪽에는 마당목과 노나무골이란 자연마을이 있다. 백전리는 잣나무가 많아 잣밭이라고도 하였다.
  • 주요 소득원: 고추, 수수, 콩.
  • 마을의 특징: 해발 400m 이상의 산간지역으로 고랭지채소 위주로 밭농사를 짓고 있다. 하장면에서 흘러내리는 세천과 백전 본동에서 흐르는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 하여 합수동이라 불린다. 마을 앞을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는 작은 금강산을 뜻하는 ‘소금강’으로 이어진다. 마을에서 화암1리에 이르는 구간과 백전리 마당목에 있는 용소에서 발원한 어천을 중심으로 100여m 양쪽으로 펼쳐지는 기암절벽은 금강산 경치와 맞먹는다고 한다.57) 하늘이 비치는 맑은 물과 오염되지 않은 냇가의 조약돌이 마을의 천연자원이라 할 수 있다. 하장면과 경계를 이루며 용소에서 발원한 시원한 물줄기는 물레방아의 동력원이 된다. 또한 1급수를 자랑하는 백전리 계곡에는 금강모치, 쉬리, 퉁가리 등 다양한 어종이 서식한다. 이 마을에는 화전민들이 많이 살았는데 1960년대 화전민 이주정책에 의해 대부분 이주를 했으며, 당시에 이주비용으로 40만원을 받았다고 전한다.

마을공동체 전통유물 전승실태

[마을 민속과 문화 환경]

조선 후기 박지원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물레방아는 농업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켰다. 떨어지는 물의 힘을 이용해 움직이는 방앗공이가 곡식을 찧어대면서 짧은 시간에 대량 가공이 가능해진 것이다. 백전리 물레방아는 1900년경에 설치되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물레방아로, 동채방아에 속한다. 한소리에 거주하던 토착민들이 농산물 가공을 위해 설치했다. 이 물레방아는 대부분의 재래식 물레방아가 원형의 모습을 상실한 것과 달리 원형을 완벽하게 보존함으로써 향토 민속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물레방아는 1996년 강원도민속자료 제6호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민속자료로 지정되면서 이곳에서는 더 이상 방앗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방앗간 안의 방앗공이는 줄에 매달려 고정되어 있고 한 말씩 곡식을 담아내던 호박(돌확을 이 마을에서는 호박이라고 부름)은 찬 기운만 감돌고 있다. 저녁에 줄을 서서 순번을 타야 할 만큼 쉼 없이 돌아가던 물레에는 이끼가 끼어 번성했던 시절의 향수만을 물씬 전하고 있을 뿐이다. 옥수수, 메밀, 콩 등을 찧어 국수와 청국장을 만들어 먹었다는 어느 제보자는 물레방아가 돌아가지 않게 되어 한 두 되씩 곡식을 빻기 위해 읍내로 가야하는 불편한 속내를 내보인다. 계곡상류에는 통물방아도 있었지만 물레방아에 비하면 일이 더디고 효율성이 낮아 일찍이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물레방아를 이용하는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물레방아계가 있었다. 제보자의 시아버지는 물레방앗간 앞 계곡에 다리를 놓고 물레방아를 관리하였다. 12월 20일을 전후해서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회의가 있었는데, 이때에 곡식을 찧은 기록을 보고하면서 “누구누구가 고추, 옥수수, 수수, 콩을 얼마를 찧어서 한 해에 얼마를 걷어 들였다”는 결산을 했다. 동네 사람들이 곡식을 찧으면 돈을 내지 않았지만 다른 마을사람들이 와서 곡식을 찧으면 정해진 돈을 내야 했는데 이 돈으로 물레방아를 수리하기 위한 부품을 샀다. 관리자는 연말에 회의를 마치고 보수로 담배 1보루를 답례품으로 받았다.

방앗간 지붕에는 음력 7월에 삼을 베고 껍질을 벗겨 말린 저릅을 얹었다. 집집마다 밀짚이나 청보리를 삼끈으로 이어서 한 아름씩 3단을 내놓았다. 용마름을 관리하는 남자들이 이 재료를 이용해서 8월에 지붕을 얹었다. 방앗간은 산간마을 가옥형태로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이다. 벽채는 나무판자로 되어있다.

[공동체 민속 유물]

  • 물레방아: 보(물을 대기 위해 둑을 쌓고 흐르는 물을 가두어 두는 곳)에서 물을 끌어들여 사용하는데, 보의 상류에는 지하수가 솟아 나오는 용소가 있어 항상 풍부한 수량을 유지하고 있다. 보에서 물레방아까지 수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마지막 부분에 T자형 목제 수로가 있다. 물레와 연결된 긴 쪽 목제 수로는 길이는 470㎝·너비는 54㎝이며, 짧은 쪽 목제 수로 길이는 202㎝·너비는 54㎝이다. 물레는 지름이 가로 205㎝·세로 190㎝·폭 67㎝이다. 물이 잠시 고였다 떨어지는 구유(큰 나무바퀴가 돌아갈 수 있도록 물을 잠시 담아두는 곳으로 물레 살을 말하는 널판)는 56개로 구성되어 있다. 구유는 긴 쪽 60㎝·짧은 쪽 25㎝이다. 물레를 고정시키는 궁글대는(바퀴가 굴러가게 하는 중심축에 길게 들어간 막대) 400㎝이다. 정선 아리랑 가사 가운데 “정선읍내 물나들이 허풍선이 궁글대는 사시상천 물거품을 안고 비비뱅글 도는데 우리님은 어디를 가고서 날 안고 돌줄 왜몰라” 라는 대목이 있다. 궁글대는 물레의 회전축으로 소나무를 사용하며, 십자목으로 설치한 양방아는 참나무로 만들고 궁굴대의 양끝 회전하는 부분에는 심을 박아 단단하게 하였다. 물레를 설치해 놓은 공간은 정면 285㎝·측면 235㎝이다. 방앗간 안쪽에는 방아채와 호박(돌확)이 2개씩 있다. 오른쪽 방아채는 길이 414㎝·방앗공이는 110㎝이며, 호박은 지름이 가로 65㎝·세로 63㎝·깊이 52㎝이다. 왼쪽 방아채는 길이 280㎝·방앗공이는 116㎝이며, 호박은 지름이 가로 70㎝·세로70㎝·깊이 54㎝이다. 방앗간은 정면 490㎝·측면 400㎝·높이 280㎝이다. 외미닫이문은 가로 90㎝·높이 135㎝이다. 방앗간에는 함박(나무 상자) 2개가 있다. 큰 것은 긴 쪽 80㎝·짧은 쪽 65㎝·높이 31㎝이고 아래가 긴 쪽 69㎝·짧은 쪽 49㎝이다. 작은 것은 위가 긴 쪽 78㎝·짧은 쪽 62㎝·높이 32㎝이고 아래는 긴 쪽 65㎝·짧은 쪽 40㎝의 사다리꼴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