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 공동체문화의 가치와 활용


3) 도래수마을 신앙·의례 스토리 자원화

2020. 10. 6 오후 4:19

(1) 천륭제단

도래수마을에서는 매년 대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제사로 천륭제를 지냈다. 제를 지내기 일주일 전에 마을회의를 통해 제물은 장만하는 화주 1인, 제관 3인, 축관 1인, 굿을 칠 3인을 선출하였다. 이들은 제를 지내기 전까지 부정 타지 않도록 금기를 지키며 행동거지를 조심했다. 마을 여러 곳에도 금줄을 쳐놓고 외부인이나 악귀가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금줄은 양쪽 돌탑이 있는 탑거리와 탑 위에 서 있는 입석, 당산나무와 천룡제단에 있는 나무, 각시샘과 제물을 장만하는 화주의 집에 쳤다. 제의는 풍물패가 마을 돌아다니며 굿을 치면서부터 시작한다. 풍물패는 먼저 각시샘에 가서 샘굿을 치고 내려오면서, 천룡제단에서 천륭굿, 당산나무 앞에서 당산굿, 탑거리의 양쪽 탑 앞에서 굿을 쳤다. 굿을 친 후 마지막으로 천룡 제단에서 유교식 제차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데, 이때 제물로 비린내 나는 어물이나 육류를 올리지 않았다.

마을주민들은 천룡제를 천제, 당산제, 천룡 당산제 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다른 지역의 당산제처럼 마을의 평안을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로 여기고 있다. 마을주민에 의하면 ‘천륭제(天㚅祭)’는 하늘을 숭배하는 것을 의미하며, ‘당산제(堂山祭)’는 마을을 하나의 집안으로 보고 마을 조상신이 좌정된 산에 지내는 제를 의미한다.

(2) 돌탑과 입석

현재 마을에는 돌탑 2기가 보존되어 있다. 마을 입구에 양쪽으로 짝을 이루듯 마주하고 있는 큰 느티나무 밑에 돌탑이 각기 하나씩 있다. 마을 한가운데로 냇물이 흐르는데, 이 냇물을 사이에 두고 마을의 북쪽을 양지, 남쪽을 음지라고 불렀다. 마을 북쪽방향인 양지에 위치한 돌탑을 마을사람들은 ‘할아버지탑’, 마을 남쪽방향인 음지에 위치한 돌탑을 ‘할머니탑’이라 불렀으며, 각 돌탑에 입석이 세워져 있다.

한편 도래수마을에서는 한국전쟁 전까지 2년마다 2월 초하룻날에 짐대 세우기를 하였다. 짐대를 세울 때 돌탑의 입석에 금줄을 쳐서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풍물패들이 와서 굿을 쳤다. 돌탑과 관련된 영험담으로 돌탑에서 길 잃은 소도둑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쳐놓은 금줄을 넘어서 들어온 도둑이 소를 훔쳐서 나가려고 하자 갑자기 길을 잃어서 밤새도록 돌탑 자리만 맴돌다가 잡혔다고 한다. 짐대는 한국전쟁 이후 세우지 않으면서 없어졌지만, 돌탑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

(3) 옥충재(진주강씨 제각)

임진왜란 때 진주 강씨 강충남이 전북 전주 완주군 초곡동에서 피난을 와서 도래수마을에 정착한 후 그 자손들이 선조들의 무덤을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인 옥녀단자 혈에 모셨다. 옥녀단자 혈과 관련된 전설이 현재 비석에 기록되어 있다. 옥녀가 신선의 도움을 받아 하늘에서 비룡을 타고 노령산맥 일대 추월산에 내려 추월군 용천면 용연의 용소를 건너오면서 용소폭포와 마당소, 바구니소, 구시소 3개의 소가 형성되었고, 그 외에 여러 지명들이 생겨났다. 용과 관련된 지명으로 용의 머리를 담은 용두암(龍頭岩), 용의 혀를 담은 무우제등(舞雩祭登)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