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 공동체문화의 가치와 활용


성황당과 수부 그리고 곳집_강원 영월군 남면 광천리

2020. 10. 5 오후 3:39

마을 현황

  • 세대와 인구: 150가구 160명.
  • 역사와 유래: 국지산 자락에 자리한 마을로 산수가 수려하여 예부터 큰 인물이 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윗다랭이골, 본골, 매화골, 무랑골, 국지골, 자작이골, 솔안이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남면 광천리의 원래 지명은 ‘너부내’이다. 비가 많이 오면 아홉 골짜기에서 쏟아지는 물이 갑자기 불어나서 마을 가운데로 넓은 내를 형성하므로 순수한 토박이 땅이름인 ‘너부내’라고 불렀다. 그 후 한자식 지명으로 바꾸면서 넓을 광(廣)자와 내 천(川)자를 써서 ‘광천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광천리보다는 흔히 ‘굴골’이라 부르고 있는데, 굴골의 유래는 광천리가 아홉 개 골짜기의 자연마을로 형성된 마을이므로 아홉 구(九)자와 골 곡(谷)자를 써서 ‘구곡’이라 했으나 구곡이 굴골로 어원이 변천된 것이다.
  • 주요 소득원: 옥수수, 콩, 고추.
  • 마을의 특징: 굴골은 1개 행정리에 본마을, 무랑골, 진자리골, 묏둔골, 국지골, 자작이골, 안골, 너분골, 솔안이골 등 아홉 골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광천리과 남면 연당 사이로 ‘각한치’라는 높은 고개가 있으며, 산봉우리가 각이 지고 칼처럼 생겼다고 하여 ‘검각산’이라 한다. 옛날 각한치에서는 마굿간을 갖추어 놓고 술과 음식을 파는 마방집이 있어 오고 가는 행인이나 소장수들이 늘 쉬어가곤 하였다.

마을공동체 전통유물 전승실태

[마을 민속과 문화 환경]

각한치 고개는 남면 연당으로 넘어가는 높은 고개로, 이 고갯마루 돌무더기 돌탑 옆에 신목과 서낭당이 있다. 현재 성황당은 4∼5년 전에 옛것을 헐고 그 자리에 벽돌집으로 다시 지었다. 전에 있던 성황당의 재목들은 불태우거나 없애지 않고 돌탑 옆에 그대로 세워놓고 있다. 서낭제는 정월 초사흗날 저녁 6시 이후에 지낸다. 제를 지내러 성황당에 오를 때는 반드시 불 넘기를 한다. 불 넘기는 짚 3∼4단에 불을 붙여 제관들이 타고 넘는 행위로 몸에 붙은 잡귀나 부정함을 물리치는 일종의 의식행위이다. 음식은 마을회관에서 부녀자들이 준비한다. 제물로 밤, 대추, 곶감과 닭, 명태포, 백설기를 준비하며, 제를 마치고 마을회관에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음복을 한다. 여성은 제사에 참여할 수 없으며, 마을의 젊은이들은 마을회관에서 마련한 제물을 당집까지 운반해 주면서 제의에 함께 참여한다. 

[공동체 민속 유물]

  • 성황당: 당집은 4∼5년 전에 마을 기금으로 새로 지었다. 기와모양의 양철지붕으로, 황토벽돌을 쌓아 정면 1칸, 측면 1칸의 구조로 만들었다. 높이 310㎝, 정면 가로 248㎝, 측면 252㎝이다. 참나무 7그루, 물푸레나무 1그루, 단풍나무 1그루가 당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 수부: 돌로 만들어진 성황의 신체로 왼쪽 높이 50㎝, 오른쪽 높이 38㎝, 둘레 75㎝이며 적석 제단 위에 모셔져 있다. 제단의 높이는 55㎝, 제단 길이 230㎝이다. 정월 초하룻날 금줄을 둘러놓은 신체에 흰 실로 창호지를 끼워 놓았다. 해마다 제를 지내기 위해 옷을 갈아입히고 벗긴 왼새끼와 실타래 그리고 창호지는 수부 아래에 놓아둔다.

  • 곳집: 상여를 보관하던 곳집은 원래 놓여 있던 곳에서 개인 땅을 점유한 이유로 10여 년 전에 현재 장소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지붕은 석면 슬레이트이고 벽은 나무로 건축되어 상례 때 사용했던 물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곳집의 높이 240㎝, 길이 620㎝이다. 18명과 34명이 운반했다는 상여가 부셔진 채로 내부에 방치되어 있다. 운구에 달았을 장식품과 영여, 요여들이 주인을 기다리나 사용될 기약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