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 공동체문화의 가치와 활용


돌탑과 돌확 그리고 동화정_전남 담양군 용면 용연리

2020. 10. 5 오후 5:01

마을 현황

  • 세대와 인구: 53가구 94명.
  • 역사와 유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분통이 용연리에 소속되었다가 이후 1961년 10월 1일에 용연리 1구 분통 마을로 부르게 되었다. 용연리 도래수 마을은 1670년경에 형성되었으며, 현재 분재실, 통사골 등의 지명이 남아있는데 이 지명의 앞머리 글자를 따서 분통(粉桶)이라 불린다. 분통은 옥녀가 세수한 다음 분 바르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 주요 소득원: 벼, 감, 복숭아, 고로쇠
  • 마을의 특징: 용연리는 치재산 자락에 위치하며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이다.
    추월산 아래 담양호와 가마골 인근에 위치한 도래수 마을은 주변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블루베리, 오디, 감자 등 제철에 생산되는 농작물 수확을 체험해 볼 수 있다. 체험행사로 농사체험, 향토음식체험, 민속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추월산 자락 아래 유유히 푸른 하늘을 담은 담양호와 계곡물 맑은 가마골의 상쾌한 솔숲향이 마을 주변에 어우러져 더없이 아름다운 풍광을 뽐내고 있다. 담양호를 중심으로 추월산 국민관광단지와 가마골 청소년야영장, 금성산성 등이 감싸고 있어 담양 제1의 관광지이다. 또한 산 허리를 뚫어 터널을 통하는 신간호반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각광받고 있다. 주변 모두가 도시민의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마을공동체 전통유물 전승실태

[마을 민속과 문화 환경]

‘도래수’라는 마을이름은 ‘농촌체험마을사업’을 시작하면서 공모를 거쳐 컨설팅을 한 후 지어진 체험마을 이름으로, ‘우주 만물이 돌고 돈다’라는 공존의 의미와 ‘통사골에서 내려오는 계곡이 마을 앞을 돌아서 흘러가는 물’이라는 의미가 있다. 도래수마을은 용추의 가마골과 강천산, 그리고 금성산과 산성산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중앙으로 담양호의 물이 흐르고 있고, 마을 안에 옥녀단자(玉女端姿)혈 양쪽으로 두 개의 골짜기 분제곡과 통사곡이 있다. 최초 입향조는 본래 전라북도 완주군 초곡동에 살던 진주강씨 강충남(姜忠楠)으로 알려져 있다. 강충남이 임진왜란을 피해 이곳으로 들어와 마을 중앙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현재 강씨, 최씨, 이씨, 김씨, 손씨, 서씨, 권씨, 정씨, 조씨, 박씨, 임씨 성이 모여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용연리 일대 마을들은 한국전쟁 때 마을이 전소된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다. 국군과 경찰들은 인민군들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공격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마을들을 모두 불태워 없앴다. 그 당시 도래수마을(분통마을)에 71가구 정도가 모여 살았지만, 주민들이 모두 추성리 재 밖으로 쫓겨나가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현재는 53가구가 살고 있으며,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체험마을사업을 운영하여 수익을 얻고 있다.

[공동체 민속 유물]

  • 돌탑: 도래수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 왼편으로 잡석을 쌓아 올린 원추형 돌탑이 세워져있다. 돌탑 둘레 500㎝, 높이 122㎝, 탑두 둘레 89㎝, 높이 62㎝이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돌탑과 입석 그리고 신목이 옹색하게 터도 없이 남의 집 담벼락에 기대어 서있다. 원추형모양의 돌탑은 둘레 500㎝, 높이 128㎝이고 탑두는 둘레 62㎝, 높이 35㎝이다. 입석은 높이 136㎝, 가로 52㎝, 두께 13㎝이고 그 옆으로 200년 내외의 느티나무 1그루가 서 있다.
  • 천륭제단: 도래수마을에서는 매년 대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제사로 천륭제를 지냈다. 마을주민들은 천룡제를 천제, 당산제, 천룡 당산제 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다른 지역의 당산제처럼 마을의 평안을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로 여기고 있다.
  • 돌확: 마을이 수몰되면서 물레방앗간에서 쓰던 돌확을 현재의 마을회관 앞 낙원정이 있는 자리에 옮겨다 놓았다. 2개의 돌확이 놓여있는데, 큰 돌확은 가로 110㎝, 세로 72㎝, 높이 50㎝, 깊이 38㎝이고, 작은 돌확은 가로 75㎝, 세로 70㎝, 높이 25㎝, 깊이 25㎝이다.
  • 정자: 동화정(同和亭)은 천지인만물지동화(天地人萬物之同和)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강대설 촌장을 비롯해 마을주민들의 협조로 건립되었다. 담양호 상류 옆 구릉에 자리하고 있으며, 팔작지붕 건물로 무실(無室)정자다. 상량문에 쓰여진 ‘세경진(歲庚辰)’이라는 글귀로 보아 1940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양반들이 풍류를 즐길 목적으로 산수 좋은 곳을 찾아 볕과 바람이 잘 통하고 자연을 음미할 수 있는 곳에 세운 정자다. 이곳 동화정에 앉아 있으면 세상의 시름에서 멀어져 신선이 되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되며, 한여름의 더위가 무색해 진다. 또한 참나무 21그루와 팽나무 2그루 그리고 느티나무 1그루가 정자와 어우러져 여유로운 멋스러움을 자아낸다. 동화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정면 580㎝, 측면 360㎝, 기둥에서 보까지의 높이 310㎝이다.

  • 옥충재: 임진왜란 때 진주강씨 강충남이 전북 전주 완주군 초곡동에서 피난을 와서 도래수마을에 정착한 후 그 자손들이 선조들의 무덤을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인 옥녀단자혈에 모시고, 제각을 지어서 옥녀와 강충남의 이름을 하나씩 따서 옥충재라고 이름 지었다. 옥녀단자혈과 관련된 전설이 현재 비석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