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 공동체문화의 가치와 활용


별신제를 전승해온 오티리 오티별신제보존회_충북 제천

2020. 10. 5 오후 2:38
  • 충북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 조사일 : 2016. 5. 23.

마을의 유래와 현황

오티리(吾峙里)는 ‘오티’, ‘오현’ 또는 ‘의티’라고 불렸으며 수산면 서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 자연마을로 거석·내촌·들돌거리(거석)·매차골·삼거리·안말·오티·오현 등이 있다. 매차골천과 한길가천 기슭에 논이 조금 있고, 하천 주변 산기슭의 완경사지에 밭이 형성되어 있다.

오티리는 수산면에서 두 번째로 큰 마을로 108가구에 2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대부분 농사를 짓고 있다. 이중 65세 이상이 78가구이며, 귀농·귀촌한 15가구는 마을 원주민과 화합이 잘되는 편이다. 오티리가 고향인 역귀성 가구도 5가구에 이른다. 귀농귀촌인의 연령대는 4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하게 분포하며 이 가운데 50대가 가장 많다. 주요 재배 작물은 담배, 브로컬리, 고추, 완두콩, 약초 등이다. 근래에 작목반을 구성하여 사과, 복숭아 등의 과수 재배도 시도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 청풍군조에는 청풍군 남쪽에 있는 ‘오현봉수’(吾峴烽燧)와 관련된 기록이 있으며, 『대동지지』에서는 ‘의현’(衣峴) 또는 의치(衣峙)라 하였다. 오티리 안말 북쪽에 하너물재, 남동단에 야미산(아미산)이 솟아 있다. 오티리 동북쪽 매차골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흐르는 매차골천과 남쪽 봉화재에서시작하는 한길가천이 수산천과 합류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청풍호로 유입된다. 오티리에 있는 산지들은 경사가 급하고 계곡이 좁아 하천 유역에 넓은 들을 형성하지 못하였다.

오티리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여러 고개들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하너물재, 백티(흰티재), 흰뜰재 (한티), 봉화재 등이 그것이다. 하너물재는 오티리 북쪽에서 고명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인근의 물이 차고 맛이 좋다고 한다. 백티는 오티리에서 율지리 방갓골로 넘어가는 옛길이며 백토가 난다고 한다. 봉화재는 오티봉수가 있던 곳으로 오티 서쪽에서 한수면 덕곡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오티리 동쪽의 오티약수, 일명 야미산 약수굴은 바위틈에서 약수가 흘러나오는데 속병에 좋다고 한다. 들돌거리는 옛 관로인 ‘한길가’ 한가운데 큰 바위가 있어 청년들이 힘을 겨루어 돌을 들어 올렸다고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고, 삼거리는 청풍·충주·단양 등 세 곳으로 가는 갈림길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봉화재는 수산면·덕산면·한수면 등 세 개 면의 경계 지역으로, 동쪽으로 단양 돈산에 접하고 서쪽으로는 충주 심향산 봉수에 인접한 오현봉수가 있던 곳이다.

400년 이상 보전해온 오티리 별신제

오티리에는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된 ‘제천 오티별신제’가 전승되고 있다. 오티별신제는 400여 년 전부터 이어져 온 마을의 공동체제의로 2년에 한 번 정월대보름에 열린다. 대보름에 열리는 공동체제의에서는 오티마을의 수호신인 서낭신과 산신을 대상으로 마을의 안녕과 개인의 소망을 기원한다. 중부 산간내륙권의 대표적인 동제로 다섯 고개 서낭신을 마을 본당에 모시고 벌이는 축제형 의례이다.

오티마을에는 각각의 고개마다 서낭당이 있으며, 마을 뒷산 중턱에는 산신당(山神堂)이 있다. 오티마을의 주산(主山)에는 마을 최고신인 산신을 모시고 고개에는 거리신인 서낭신을 모신다. 다섯 개의 봉우리 가운데 서낭당이 위치한 곳은 봉화재·말구리재·매차골·흰티재·해너물재 등이다. 이들 중 봉화재에는 ‘큰봉화재서낭’, ‘작은봉화재서낭’ 등 두 개의 서낭당이 있다.

별신제는 ‘오티별신제보존회’에서 전승을 담당하고 있다. 별신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58명 정도가 필요한데, 현재 회원은 25명뿐이다. 농촌의 고령화로 인원 확보가 어려운 형편이다. 회원의 범위는 마을주민에 한정하고 있으며, 운영비는 전승지원금으로 충당한다. 별신제 전승을 위해 도비와 시비를 합쳐 1080만원을 지원받고 있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여 공모사업에 응모하기도 하는데, 현재 보존회에서 진행하는 사업으로는 교육사업, 전수관 운영, 별신제 축제화(2016년 처음 대보름축제 개최) 등이 있다.

전수관(2008년 준공)은 제천시의 자산이며, 보존회에서 위탁관리를 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별도의 공동자산은 없으며, 회원들이 따로 부담하는 비용도 없다. 별신제보존회 임원은 회장(1), 부회장(2), 총무(1), 사무국장(1), 농악대장(1), 감사(2) 등 8명으로 구성된다. 보존회에서는 성황제 준비를 도맡고 있으며, 음식은 부녀회에서 장만한다.

오티별신제는 본래 마을의 대동회인 ‘만동회’에서 주관하였다. 만동회의 총회는 12월 둘째 주에 열리며, 임원으로는 이장, 각 반장, 부녀회장, 새마을지도자가 있다. 총회가 열리면 사업비 정산자료와 회의록을 기록으로 남긴다. 오티별신제가 문화재로 지정되기 이전에는 만동회에서 가구마다 2만원씩 걷어 별신제에 쓸 돈을 마련하고 총무가 이를 관리하였다. 이와 별도로 이장이 주관하는 회의가 매년 음력 1월 6일에 열리며, 이때는 마을 운영 전반에 대해 서로 논의하고 각종 사업비 집행 내역을 결산한다. 이 외에도 마을의 대소사나 농사와 관련하여 필요한 경우 수시로 회의를 소집한다.

오티별신제보존회의 활동

오티별신제는 정월 초엿샛날부터 준비를 시작한다. 이때 ‘제관’, ‘지관’, ‘축관’, ‘공양주’ 4명을 정한다. 정월 14일에는 고사를 지내며, 상당에서는 대고사를 지내고 하당에서는 돼지를 잡는다. 고사 때는 돼지 1마리와 소머리와 소다리 4개를 장만한다. 마을공동체 제의의 성격을 지니므로 마을주민들 100여 명이 참여한다.

별신제에서 연행하는 농악은 마을에서 교육을 통해 자체적으로 전승되고 있으며, 외부에서 배우러 오기도 한다. 교육은 1개월 단위로 진행되며 마을주민이 참여하는 농악연습은 농한기에 한다. 민속경연대회에 나갈 때는 60명을 다 채워서 농악을 연행하며, 이때 머리에 쓰고 돌리는 벅구잡이만 외부인으로 충원한다. 별신제에는 남자만 참례하는데 여자 역할이 필요할 때는 남자가 여장을 한다. 오티별신제 제당은 봉화재, 작운재, 칼거리재, 힌티재, 하너물재에 5개가 있는데 각자 모두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음력 1월 12일에는 산신각에 올라가서 금줄을 치고 구덩이를 파서 술을 담아놓고 내려온다. 음력 1월 14일에는 공양주가 묻어둔 술동이의 술을 걸러 제주로 사용하며, 오후 3시에 돼지를 잡고 준비가 다되면 제관과 축관이 올라가서 제를 지내고 집집마다 소지를 올린다. 대보름에는 아침 6시부터 농악을 치면서 본당(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새로 지음)에 올라간다. 이때는 외부에서 모셔온 상쇠는 연주를 하지 않고 마을 주민인 부쇠가 농악을 주도한다. 이날 아침에 장승에서 농악을 치면 마을 주민이 다 모이며, 농악을 치면서 산으로 올라갔다 내려오면 오전 11시 즈음이 된다.

제의는 2년에 한번 지내는데, 공연형식의 행사는 1년에 한번만 한다. 2015년에는 괴산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에 참가했었고, 이때 버스 1대와 화물차 4대가 동원되었다. 농악을 비롯한 여러 전통행사는 전승자를 대상으로 한 경제적 지원이 거의 없어 새로운 전승자를 구하기가 더욱 어렵다.

공동체조직의 변화 양상

2015년에는 별신제축제화사업에 선정되어 2016년에 처음으로 관련 행사를 개최하였다. 정부에서 지원한 2천만 원 외에 마을의 기금을 보태 축제를 개최했으며, 인력은 마을사람들로 충당하였다. 예전에는 별신제를 하면 길이 막힐 정도로 구경꾼이 많았다. 별신제는 성황제의 일종으로 한국전쟁이 벌어질 때까지만 하더라도 노련한 상쇠가 있었는데, 그 후 전수가 중단되어 현재까지 문제가 되고 있다.

과거 이장이 당연직으로 회장을 맡고 총무를 따로 선출하였는데, 보존회가 생기면서 운영이 분리되었다. 오티별신제 보존회에는 인간문화재로 등록된 사람이 없고 전수조교도 없다. 인간문화재 등록이 안 되는 이유는 상쇠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을이 가진 유무형적 자산으로는 별신제를 비롯해 연못공원, 보존회 시설, 서낭나무가 있으며 이들은 마을사업의 기반이 된다. 연못공원은 1종 근린시설이며 보존회 시설은 4~5인이 숙박가능한 방 3개와 주방이 있다. 현재 이 마을에서는 마을기업에 선정되어 장아찌 등의 농산물 가공을 주업으로 하는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