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 공동체문화의 가치와 활용


2) 삼굿마을 생업·생활 스토리 자원화

2020. 10. 6 오후 12:03

(1) 삼굿과 삼굿구이

삼굿은 삼베의 원료인 삼(대마)의 껍질을 벗기기 위해 삼을 찌는 작업을 말한다. 삼을 찌는 방식은 삼굿, 삼가마, 땔굿, 소죽 쑤는 가마솥 등 다양한데, 그 가운데 삼굿은 예부터 전해 내려오던 전통적인 방식이었다. 삼굿의 구조는 몸집과 화집이 같이 붙어 있는 일체형과 떨어져 있는 분리형으로 나뉘는데 삼굿마을에서는 분리형 구조로 삼을 찐다. 분리형의 구조는 크게 화집(발열실), 격벽, 몸집(증숙실)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집은 일반적으로 삼을 찌기 위해서 증기를 발생시키거나 적절하게 조절하는 역할을 하며, 격벽은 화집에서 전달된 증기와 직접적 화기에 의한 삼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몸집은 화집의 앞부분에 설치되며, 격벽을 통해 유입된 증기를 이용하여 삼을 찌는 역할을 한다.

삼굿은 삼을 찌는 과정에서 필요한 물을 쉽게 운반할 수 있는 하천 주변에서 하였다. 삼굿마을에서는 성황당 근처의 개울가에서 삼굿을 하였다. 삼굿의 세부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땅에 화집과 몸집 구덩이 2개를 파고, 그 사이로 증기가 통할 수 있도록 격벽을 설치한다. 화집에는 통나무를 약 2미터 가량 쌓고, 그 위를 자갈로 덮는다. 통나무에 불을 피워 자갈을 달군 후 자갈을 막대로 다지고 풀과 흙으로 덮는다. 몸집에는 삼단으로 묶은 삼대궁을 차곡차곡 쌓아 놓고 풀과 흙으로 덮는다. 약 4시간 정도 경과되면 흙으로 덮은 화집에 막대기로 구멍을 내고 물을 부어 고온의 수증기를 발생시켜 격벽을 사이에 두고 연결된 몸집을 데워서 대마를 익힌다.
화집에 구멍을 내어 물을 붓는 것을 ‘진물 붓기’라고 하며, 물을 붓은 후에 구멍은 다시 메워 준다. 화집에 여러 개의 구멍을 내어 물을 충분히 부어줘야 되기 때문에 개울가에서 물을 지고 나르는 작업을 바쁘게 하였다. 삼굿 과정에 대한 주민의 제보는 다음과 같다.

[삼굿을 하면 동네 사람 다 모여서 합니까?] 그럼요. 전체가 모이지. 그럼 모여가지고 삼굿을 할 때 옥수수가 납니다. 옥수수 삶아서 먹기도 하고. [보통 어디에서 합니까?] 저기 지금 성황당 바로 위에서 했습니다. [구덩이를 파서 하나요?] 불을 넣는 데는 구뎅이(구덩이)를 깊게 파고. 소낭구(소나무)를 많이 해서 쌓아 놓고. 삼할 때는 동네가 하니까. 아주 굵은 돌을 돌이란 돌을 다 가지고 와서 낭구를 덮죠. 낭구를 덮어야 돌이 달구어지니까. 한 질 정도로 파고 들어가고. 그 위에는 낭구를 태산같이 쌓고 흙을 덮고. 집 짓는 것만큼 하죠. 그래서 덮어 놓고 그러면 나중에 물을 부으면 꽝꽝 소리가 나미. [흙 위에요?] 그렇죠. 불 해놓은 데 덮어 놓고 그 복판에다가 큰 낭구를 질러서 이리저리 흔들면. 구뎅이에 나무를 쌓아 놓고 돌을 꽉 덮어 놓죠. 그리고 구녕(구멍)에 불을 질러 놓죠. 그전에 화목 때던 식으로 구들장 밑으로 연기 나가듯이 통과하도록, 김이 확 통과하도록. 김빠지는 구녕(격벽) 거기에 삼을 태산같이 쌓죠. 돌이 달구어졌으니까 여기에 흙을 덮었을 것 아니요. 거기에 물을 디비 붓는 거예요. 부어야만 돌이 달궈졌던 게, 김이 밑으로 디비 치는 거지. 여기에 흙하고 나무하고 다 덮어 놓는 거죠. 물을 부으면 수증기가 디비 치는 거지. 그러니까 구뎅이가 2개가 되는 거죠. <박○○(남, 72세)의 제보(2017년 5월 1일)>

삼굿의 작업은 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소요되기 때문에 마을주민들이 함께 모여서 공동으로 작업하였다. 삼굿에 쓰일 돌과 나무 등의 재료는 마을주민들이 서로 분담하여 가져왔다. 삼굿은 힘이 많이 들어가는 강도 높은 노동이었기 때문에 주로 남성들이 담당하였으며, 여성과 아이들은 진물 붓기를 할 때 물을 나르는 일을 도와주었다. 마을주민들이 삼을 찌는 과정에서 자기 집의 대마를 구별하기 위해 대마 위에 감자, 옥수수 등을 넣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삼굿구이의 유래가 되고 있다. 옛날 보릿고개 시절에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아이들이 아무 밭이나 들어가서 서리한 감자, 옥수수 등을 부모님 몰래 강가로 가져가서 작은 형태의 삼굿을 하였는데, 이를 감자삼굿이라 불렀다.

삼굿마을에서는 더 이상 삼굿으로 대마를 찌지는 않지만, 그것을 활용하여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축제에서는 삼굿에 대마 대신 옥수수, 감자, 계란 등을 찌고 삼겹살을 구워 나눠먹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삼굿마을 축제콘텐츠에서 가장 중심적인 소재가 되고 있다.

(2) 삼굿마을 전통음식

옥수수는 식량이 부족한 산골 주민들이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먹었던 음식으로 ‘옥식’이라고도 하며, 삼굿마을에서는 이것으로 올챙이국수를 많이 해먹었다. 올챙이국수라는 명칭은 면발이 올챙이의 모양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붙여졌다. 삼굿마을에서는 올챙이국수를 올챙이묵이라고도 하는데, 면발이 묵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복날에는 감자전과 함께 메밀전병을 절식(節食)으로 즐겨먹었는데 무, 배추김치, 돼지고기 등을 다진 소를 넣는 것이 특징이다.

설날에는 떡국 대신 만둣국을 즐겨먹었는데 아녀자들은 친척 어른들께 만둣국을 가지고 가서 세배를 하고 문안을 드렸다.

대보름에는 찰밥을 지어서 집안 곳곳의 가신이나 잡신에게 올렸다. 가신에게 찰밥을 올리는 풍속은 가신이 그 집의 1년 농사와 가족의 건강을 관장하는 것으로 믿어졌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때로는 하찮은 신격도 행운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에 외양간, 변소 등의 잡신에게도 오곡밥을 올리거나 뿌렸다. 

수리취떡은 약떡이라고 하여 단옷날에 꼭 먹었는데, 수리취로 떡을 하면 잘 쉬지 않아 오랫동안 먹을 수 있었다. 추석에는 송편을 먹었는데, 예부터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처녀는 좋은 신랑을 만나고 임산부는 예쁜 딸을 낳는다고 하여 송편 빚기에 정성을 다하였다. 또한 덜 익은 송편을 깨물면 딸을 낳고 잘 익은 송편을 깨물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임산부들이 찐 송편을 일부러 씹어보기도 하였다. 

동지는 해가 가장 짧은 날이라 음(陰)이 극에 달해 음성인 귀신이 성하다고 한다. 이를 물리치기 위해서 양(陽)을 상징하는 붉은 팥을 죽으로 쑤어 대문이나 벽에 뿌려서 귀신을 쫓고 새해의 무사안일을 빌었다.

한편 어린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뺏긴 후 영월로 유배되어 외롭게 관풍헌(觀風軒)에 있을 때 한성부윤을 지냈던 추익한이 머루를 따서 바치고 문안을 드렸다고 한다. 추익한은 폐위된 단종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지 않고 찾아와 종종 문안을 드렸으며, 단종이 세조에 의해 변을 당하자 따라 죽었다.

(3) 초가집과 디딜방아

이 마을에는 150년 된 초가집이 한 채 보존되어 있다. 산촌지역의 특성상 주위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인 나무와 흙으로 집을 지었으며, 지붕은 볏짚을 이엉으로 엮어 올렸다. 초가집의 구조는 방 1칸, 부엌 1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부엌에는 디딜방아까지 들어가 있다. 이 마을은 겨울이 길어 눈이 많이 내리면 통행이 불편하여 하나의 지붕 아래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디딜방아는 생계를 잇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품이었는데 주로 수확한 곡식을 도정하거나 곡식을 빻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보리의 수확기인 여름철에는 부녀자들이 밤을 새워가면서 디딜방아로 보리나락을 찧었다. 보리나락을 찧는 일은 아주 고된 작업이었는데, 이것을 제사상에 올리면 자손들이 너무 힘들게 얻은 곡식이라는 것을 알고 조상이 젯밥을 드시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마을에 전한다.

“집집마다 다 있었어.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 방아, 맷돌 있어야 밥을 해서 먹지. 옛날에는 다 그렇게 하고 살았지. 내 집에 방아가 없으면 남의 집에 가서 해야 하니까. 그러면 좋아 안 해. 뭐든지 다 찧었어. 보리나락 다 찧어서 했지. 힘들어도 어른들이 밖에 일하러 나가면 혼자라도 해야지. 혼자 찧고 하니까 힘들지요. 방아 찧어 제사 지내면 조상이 음감을 안 한다고 했어요. 힘들게 만들었다고 해서. 방아 찧다 다치기도 해요. 여름에 보리방아 찧으면 잠 못 자잖아. 그러다 자버려. 방아는 여름에도 찧고 계속 찧어요. 아침에 방아 찧어서 저녁까지 해먹는 거예요. 무슨 날이 있으면 더 힘들지. 순 강냉이밥 하는데 맷돌로 갈아야지. 옛날에는 한말, 두말 그렇게 갈아야 해. 옥수수, 감자, 팥도 넣고 해서 좁쌀 여러 가지 넣어야 밥이 부드럽고 좋아. 여기에 옛날에는 논이 많았는데 다 밭이 되었어. 벌써 오래 됐어요." <김○○(여, 85세)의 제보(2017년 5월 1일)>

이렇게 삼굿마을 아녀자들은 수확한 곡식을 디딜방아로 찧거나 맷돌로 갈아야 하는 고단한 작업을 통해 조상에게 올릴 제사상과 가족의 밥상을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