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 공동체문화의 가치와 활용


서낭당과 돌탑_강원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

2023. 2. 6 오후 9:09

마을 현황

  • 세대와 인구: 172가구 385명.
  • 역사와 유래: 구정면은 강릉시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정마을은 구정면에서 남쪽에 위치한다. 1911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하구정면이라 칭하였다. 1917년 면제개혁(面制改革) 때 상구정면이 왕산면으로 개칭되면서 구정면으로 개편되었다. 구정리는 마을에 거북이가 나온 우물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이 마을에 효자가 살았는데 효자의 아버지는 병환으로 누워 있었다. 병이 깊은 아버지는 고기를 먹고 싶어 했으나, 때가 겨울이라 고기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효자는 집 앞에 있는 우물로 가서 하늘에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하였다. 그러자 우물에서 거북이가 나오므로 그 거북이를 잡아 아버지께 삶아 드려 아버지의 병환을 낫게 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로, 현재의 구정정미소 앞 냇가에 있는 바위의 모습이 마치 거북이 등처럼 생겼고, 그 옆에 우물이 있다고 하여 구정리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 후 구(龜)자는 쓰기가 불편하여 음이 같고 또 마을이 산으로 가려 움푹하게 파인 언덕이라는 뜻에서 구(邱)자를 썼다고 한다.
  • 주요 소득원: 벼, 옥수수, 감자.
  • 마을의 특징: 강릉시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높게 보이는 칠성대의 북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전반적으로 칠성대를 중심으로 한 여러 개의 산줄기가 끝나고 평야부가 시작되는 곳에 자리잡아 농사에 유리한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최근 강릉에서 동해로 연결되는 새로운 고속도로가 마을을 통과하여 과거보다 훨씬 접근성이 양호해졌다. 그리고 지방도와 군도를 연결하는 도로가 포장되어 강릉시까지 걸리는 통행시간도 이전보다 단축되었다.

마을공동체 전통유물 전승실태

[마을 민속과 문화 환경]

구정마을의 서낭당 주변으로 적송이 서 있고 돌담이 둘러싸고 있다. 돌담 안쪽에 돌탑이 세워져있고 앞쪽에 남근석이 놓여있다. 마을사람들은 예부터 서낭이 마을을 수호하고 재액과 병을 막는다고 믿어 서낭당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였다.

남근석이 세워진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며 남근석에 치성을 드리는 것은 기자발원의 의미가 담겨 있다. 돌탑 위에 세워져있던 남근석은 15년 전 누군가에 의해 사라져서 마을사람들이 자연석으로 다시 세워 놓은 것이다. 현재는 밖에서 볼 수 없게 돌탑 아래에 남근을 세워놓았다.

구정마을 서낭제는 음력 10월 10일에 지낸다. 제를 지내기 10일 전부터 왼새끼를 꼬아 당 주변에 두름으로써 제의 시작을 알린다. 제물에 쓰일 음식 재료는 이장을 중심으로 남성들이 준비하며, 음식은 여성들이 만든다. 여성들은 제의 참여를 금하고 있다. 제물준비 비용은 마을기금으로 하고 있는데, 현재 동답 700여 평과 부속건물을 임대해서 매월 나오는 임대 수입 30만 원과 마을 사람들의 자발적인 희사금을 합해서 준비한다. 제물은 소고기를 덩어리 채로 준비해 생으로 올리고 어물은 2가지를 준비한다. 삼색과실과 포 그리고 막걸리를 올린다. 제주(祭酒)를 만드는 전용 단지가 당집에 있는데, 먼저 불을 피워 연기로 단지를 소독한 후 고두밥을 지어 누룩과 섞고 보름이상 삭힌 후 걸러서 제주로 사용한다.

[공동체 민속 유물]

  • 서낭당: 마을 북동쪽 들머리에 조성되어 있는 서낭숲 안에 당이 있다. 서낭당 내부에는 성황지신(城隍之神), 토지지신(土地之神), 여역지신(癘疫之神)을 모시는 위패가 놓여 있다. 정면 320㎝, 측면 220㎝, 높이227㎝의 규모의 기와 맞배지붕에 정면 1칸 측면 1칸의 목조건물이며, 정면에는 여닫이문이 있다. 마을을 관통하고 흘러온 두 개의 물줄기가 빠져나가는 들머리에 조성되어 마을의 복락(福樂)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며, 마을을 둘러싼 산자락이 미처 가리지 못한 틈새를 메우기라도 하듯 동구를 가려 막고 있다.
  • 돌탑: 마을의 재물과 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수구막이’의 역할을 한다. 풍수지리에서 수구막이는 좋은 터가 되는 조건으로 수구막이가 잘 되어 있지 않은 경우, 마을의 기운이 마을 밖으로 빠져나가 좋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이러한 마을은 술, 건물, 돌탑 등의 조형물을 세워 수구막이의 역할을 대신하였다. 이 마을 돌탑은 원추형 모양으로 잡석을 쌓아 높이 250㎝, 둘레 1088㎝이다. 돌탑은 돌담과 연결되어 있고 돌탑 아래에 남근석이 세워져 있다.
  • 남근석: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탑 위에 있는 돌이라 해서 ‘탑윗돌’이라 불렀다. 또한 남근을 상징한다고 해서 ‘좃부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연석으로 높이 70㎝, 둘레 74㎝이며, 귀두의 경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남근석은 남자의 성기를 형상화한 돌로 생산과 풍요를 상징하며, 기자신앙의 대상물로 여겨진다. 마을 사람들이 바위를 돌탑이라고도 하지만 ‘좃부리’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성석(性石)의 역할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에는 남근석에 치성을 드리고 바위를 안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